“넌 염치도 없냐?” “참 몰염치하다!” “파렴치한 사람”

우리가 일상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특별한 의미 없이 무의식중에 내뱉기도 하지만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때로는 이 말 한마디로 인간관계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할 때 몰염치한 사람과는 어울리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잘 아는 사람이라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염치’란 게 대체 뭐 길래 그런 걸까? ‘염치’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염치”에 대해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체면”이란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의미하니 결국 “염치가 있다는 것은 남을 대할 때 떳떳하고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염치란 게 사실 별 게 아니다.

우리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는 염치 있는 사람이란 매우 상식적이고 그런 사람으로 생활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도 아니다.

맹자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염치가 없어서는 안 된다(人不可以無恥)”고 했다.

달리 말하면 “염치가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란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순자는 심지어 “염치는 없으면서 음식만 탐하는 자를 아주 악질적인 소인배(無廉恥而嗜乎飮食則可謂惡少者矣)”라 했다.

또한 공자는 “염치를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까워지는 것(知恥近勇)”이라 했다.

염치가 있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다.

설사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알고 잘못을 빌게 된다.

반면 염치를 모르는 사람은 못하는 짓이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에도 염치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국가도 염치를 아는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정치인을 비롯해 몰염치한 일본인에 한함)은 그렇지 않다.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만행은 범하지 말았어야 하는 파렴치한 짓이었다.

염치를 모르니 못할 짓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그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 역사적 과오가 있음에도 사과하지 않는 것 자체가 몰염치한 일이다.

즉 부끄러움이란 게 뭔지 모르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며 사과할 용기조차 없으니 비겁한 존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일본인들은 “실례합니다” “미안합니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한다.

아마도 일본인들의 이러한 습관 때문에 외국인들은 일본인들을 매우 예의바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안부, 불법착취 강제징용 등 용서받을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불법착취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본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과는 사과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게 아니고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이 자발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과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며 염치가 있는 사람의 자세다.

일본이 스스로 사과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이 사과를 요구했는가? 그럼에도 일본은 끔쩍도 하지 않았다.

몰염치한 짓을 자행하고도 사과는커녕 해마다 망언의 수위를 더 높여가는 것을 볼 때 몰염치가 얼마나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행위인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염치라도 가지라는 의미다.

맹자의 말대로라면 인간이 되라는 것이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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