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양분하여 나눈다면 그 기준은 사람이다.

모든 디자인은 디자인하는 대상이 ‘사람보다 큰가’ 아니면 ‘사람보다 작은가’로 나누어질 수 있다.

예전에 일본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회를 본 적 있다.

거기에는 호박에 디자인하여 크기를 실제보다 10배정도 확대한 조각품들이었다.

실제 똑같은 호박에 큰 조각으로 만들어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일상의 흔한 것들이 스케일이 큰가, 작은가에 따라서 그냥 호박일수도 있고 유명한 조각품이 되기도 한다.

스케일은 이렇게 중요하다.

흔히 건축은 디자인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여타 디자인 분야와 같을 것 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그래서 휴대전화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건축 디자인도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모든 디자인은 사람의 몸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내 손 안에서 가지고 노는 휴대 전화를 디자인하는 방식과 여러 명이 들어가서 다양한 행위를 해야 하는, 사람보다 훨씬 크고 사람보다 오래 지속되는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방식은 달라야 한다.

이러한 명백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 중에서도 제품 디자인을 하던 전문가가 같은 방식으로 건축 디자인 혹은 도시경관 디자인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가 있다.

이런 분들은 건물의 외관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축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서도 새들이나 볼 수 있는 조감도적인 시각에서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들은 더 문제다.

비근한 예로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가 그러한 예이다.

실제로 내부공간적으로 어떠한 체험을 하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고 외부에서 보이는 곡선의 형태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건축 디자인이다.

물론 외관만으로도 감동적인 좋은 작품도 있다.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내부적 누수와 유지관리 문제가 되고 기타 시설들이 부족하여 미술관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하지만 스페인을 상징하는 건축물로서 손색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은 특별한 경우이다.

기본적으로 건축은 밖에서만 바라보는 조각품과는 다르다.

건축은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 가서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환경을 디자인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은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관점을 중요하게 여긴 건축이다.

병산서원이나 소쇄원 같은 건축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보다는 마루에 앉아서 바깥 경관을 보는 것을 더 중요하게 고려해서 디자인한 건축이다.

이처럼 좋은 건축은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나 옷을 디자인하는 식으로 건축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건축은 인간이 안에 들어가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나 공간의 스케일감이 주는 느낌은 경험으로밖에는 알 수가 없다.

십 년만 지나면 가상현실 고글을 쓰고서 공간을 둘러보고 난 후에 건축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런 시절이 와도 재료가 주는 촉감, 냄새, 잔향 같은 물성의 느낌을 전달하기는 어려워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건축 공간이 주는 감동은 여러 가지 현상의 조합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건축은 인간의 몸보다 큰 것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몸보다 작은 물체를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르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사용자의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디자인해야 한다.

/라인종합건축사사무소 김남중 대표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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