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찍이 가무에 능하여 가르쳐주지 않더라도 몸에 밴 춤을 춘다. 고대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춤은 무용총 등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역사적으로 알면 될 것 같고 연예인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의 춤이 우리 생활에 자연스럽게 안착하였다.

춤을 따라잡기 위해 청소년들이 안무자들이나 이미테이션 하면서 춤을 배우고 익히며 오늘도 연예인 춤을 모방하기 위해 참 애쓴다. 공교육에서는 춤 즉 무용이라는 과목을 개설한 일부 중고등학교를 제외하고는 춤을 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는 배우기가 무척 어렵다.

무용 선생이 배치된 학교 이외에는 정말 춤의 꿈나무들은 개인적인 무용가들에 의해 춤을 배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배운 춤꾼들이 허접한 춤을 딛고 명품의 춤을 추기 위해 애쓰고 있다. 모든 사물에는 명품이 있다. 우리가 가방이나 각종 액세서리를 명품이라고 하면서 몸에 치장하는 것을 으뜸으로 삼고 우쭐해 하는 사람을 본다. 사실은 몸 자체가 명품의 가치를 발할 때 그 명품의 가치는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대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몸을 명품으로 만들기보다는 명품물건을 몸에 걸친다.

춤도 명품이 있다. 사실 무대에 올려지는 춤의 대명사는 명품으로 부를 수 있는 정교한 예술품으로 명품 중의 명품이다. 아무리 세공을 잘해서 명품 도자기나 명품물건을 제작한다고 해도 어찌 사람이 표현하는 춤의 세계를 물건의 명품과 비교할 수 있으랴.

춤은 몸 전체를 움직이는 명품의 흔들림이다. 손가락 하나에서부터 발끝의 동작까지 섬세하게 움직이는 춤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난다.

어찌 사람의 몸이 어떠한 예술품의 세계보다도 더 정교하고 전문화되어 있으며 감동을 줄 수 있는가? 아쉬운 점은 항상 눈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의 존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주에 있는 무형유산원처럼 이러한 무형의 문화를 명품화시키는 예술의 가치는 어떤 무대공연의 작품보다도 더 뛰어나다.

무대공연은 크게 몇 가지 장르로 나뉜다. 귀로 듣는 것이 순수 클래식 음악이요, 귀와 눈으로 즐기는 것은 연극이며, 이를 가미한 것이 국악과 연예공연 그리고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춤의 공연무대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전북지역의 명품춤은 대부분 전통무용에서 비롯된다. 서양무용 격인 발레나 외국무속무용 및 재즈 등도 있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장 잘 어울리면서 명품춤을 선보이는 무용이 바로 전통무용이다.

이 전통무용의 가치에 빠지면 심오한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아무 색깔도 없는 하얀 빛깔의 춤복에 심금을 울리는 전통악기가 울리면서 살며시 무대 위에서 날개짓하는 명품춤은 궁중무용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옛날의 춤이었다.

그렇지만 예술혼의 세계가 일반인들과 함께하면서 궁중음악과 춤이 하나로 각색되어 오늘의 명품춤을 탄생시켰다. 그동안은 서울 등 대도시에서만 이런 명품춤을 볼 수 있었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의 흐름이 지역사회에서도 전파되면서 작은 소도시에서도 지역 명품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지난 9월 전주지역의 명품춤을 볼 수 있는 공연이 펼쳐졌다. 일상적이고 단아한 춤이 아닌 우리 민족의 정서가 녹아있고, 고품위의 예술혼을 불러일으킬 명품춤이 바로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이다. 끼를 가진 사람들이 문화의 전문성을 가지고 예술혼을 불태운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끼 하나만으로는 어렵다. 명품춤을 추기 위해서는 춤을 위한 일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오직 필살기의 입장에서 춤을 통한 역사의 줄기를 이어갈 예술의 가치를 몸에 새기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런 명품춤을 춤의 명문가들이 무대 위에서 표출할 때 숨죽이면서 그들의 공연을 지켜본다. 감히 무형문화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명품춤의 구현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예술혼을 가진 모든 이들이 함께 전라도 천년의 정도를 맞아 그 꿈을 실현하는 데 동행하길 바란다.

/전주무용협회 노현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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