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자주 가는 산이 있다. 모악산이다. 시립도서관에서 검색을 하면 2004년에 출판된 ‘무악산의 수난기’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김병곤 선생이다. 1913년생으로 38년간 교편을 잡았다. 5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내용을 아주 간단하게 줄이면 “모악산의 원래 이름은 무악산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모악산의 이름이 무악산이란 여러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두 가지 정도 소개한다. 하나는 저자는 13세에 금구초등학교를 졸업했다. 1926년 부르던 교가에서 모악산이 아니라, 무악산이라 노래했다. 다른 하나는 ‘한국사찰의 주련’이란 책에서도 무악산 금산사라고 표기하고 있다. 반대 증거도 제시하고 있다. 금산사에서 만든 ‘금산사지’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모악산 금산사라고 쓰여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산의 상봉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형상의 돌이 있어 모악이라고 한다지만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에 불과하다.”라고 덧붙여 있다. 

고지도를 찾아봤다. 여러 지도가 있지만 두 개만 소개한다. 18세기 중반에 나온 ‘해동지도’가 있고, 1872년에 나온 ‘지방지도’가 있다. 둘 다 관에서 만든 지도다. 이걸 보면 18세기 이전에는 무악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19세기부터 모악산으로 표기가 바뀐다. 왜 바뀌었을까? 한글로도 모와 무가 점하나 차이지만, 한자도 비슷하다. 어모 母자와 없을 毋자가 비슷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무악산도 모악산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표기 오류일 수도 있다. 옛 지도를 보다 보면 이런 오류들이 상당히 많다. 이것을 두고 정오를 따지며 유래를 찾는 것도 재미있지만, 지명이 바뀌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것은 왜 당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는지 상상하며 추측해 보는 일이다. 추탄 이경동의 설화에서 효자는 약을 구하기 위해 팔복동으로 간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에서는 효자가 전주 시내로 약을 구하러 간다. 시대상이 반영되어 이야기가 변주되었다. 

모악산을 무악산이라고 주장한 이야기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져 있는가? 현대사회는 다원화된 사회다. 대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그것을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이야기의 내용이 맞다 틀리다로는 대상의 진실에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다. 대부분 기원을 따지는 문제는 진실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작용을 한다. 한때 지자체들이 음식점처럼 특정 문화유산을 선점하려는 원조논쟁을 벌였다. 많은 예산을 책정해 경쟁적으로 학회를 열었다. 다양한 이야기는 그 권력을 해체시킨다. 

모악산에는 다양한 민중 신앙이 존재한다. 오래전부터 생각과 사상의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단적인 예로 정여립에 관한 설화만 해도 전주와 완주 지역이 다르다. 조선시대에는 역적으로 몰았고, 살던 집은 파서 연못을 만들었다. 정여립에 대한 설화는 악행을 저지른 역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금구면과 금산면의 설화에서는 정여립을 문무를 갖춘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에 역적을 영웅으로 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데, 지배자들의 역사관이 아닌 민초들의 역사관이 담겨 있다. 

전주문화재단은 오는 26일 “전주 이야기 숲 설래임(說來林)”을 주제로 송천동 세병공원에서 마을이야기 구연대회를 개최한다. 5분간 누구나 마을의 역사, 전설, 미담, 음식, 생활 등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경험한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회다. 이야기의 내용에 맞추어 피아노 즉흥연주와 샌드아트(Sand Art)를 활용해 모래로 장면, 장면이 연출된다. 

/김창주 전주문화재단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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