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통 혼란스러운 상태나 무질서 생태를 나타내는 말을 종종 “개판 오분전”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쓰는데 이 말에는 우리 민족사의 슬픈 역사가 담긴 단어이다.

이는 6·25전쟁 당시 피난 중에서 배식용 밥이 다 지어지기 5분 전에 “개판 5분 전(開版五分前)”이라고 큰 소리로 외쳐 배식시간이 다 됐다고 알린다.

밥을 짓고 있는 솥뚜껑(版)이 곧 열리니(開), 집을 떠나온 피난민들은 그나마 끼니를 잇기 위해 피난민들이 구름떼 같이 밀려들어 아수라장이 되는 상황인 것이다.

즉 정신이 하나도 없고, 주위가 아주 엉망진창인 상황을 일컫는 말로 아사리판이 된 것이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개(犬)판 즉, 멍멍판이 아닌 솥뚜껑을 연다는 뜻이다.

때에 따라서는 ‘꿀꿀이 죽’ 또는 요즈음 널리 퍼진 음식인 ‘부대찌개’도 이에 해당된다.

아수라장(阿修羅場)에서 아수라는 산스크리스트 ‘asur’의 음역이다.

아소라, 아수락, 아수륜등도 동시에 표기하고 수라라고도 약식으로 표기하는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원래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착한 신, 善神)이었는데 후에 악신(惡神)으로 변해 증오심이 가득한 싸우는 신인 전신(戰神)으로도 불리운다.

이 아수라신의 힘이 강해지면 빈곤과 재앙과 그리고 불의가 만연해진다.

아수라장은 하늘의 신인 선신한테 공격을 당해 죽은 아수라들의 시체가 겹겹이 쌓여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이 바로 아사리판인 것이다.

아사리판은 산스크리스트 어의 덕망 높은 스님을 ‘acaryal’이라 했는데 이의 중국 음역이 아사리(阿闍梨)이고 이들 덕망 높은 스님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아사리판이다.

지식이 높고 덕망이 높은 아사리들끼리 모여서 토론하다 보면 원래의 목적을 넘어 자칫 소란스럽고 무질서해지며 싸움과 이전투구의 형상이 벌어진다.

즉, 덕망 높은 스님들이 함께 모여서 선과 덕을 닦는 곳에서 되레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 즉, 아수라장이 돼 버린다는 뜻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야외에 법단를 마련해(野壇)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法席)라는 뜻이다.

석가가 설법을 행할 때 최고로 많이 모인 때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인데,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 한다.

그러니 법당에서는 못하고 야외에서 그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마이크도 없이 강의를 했으니 얼마나 무질서하고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하고 경황이 없겠는가? 말 그대로 야단법석인 것이다.

이 개판오분전, 아수라장, 아사리판, 야단법석을 전술했듯이 원뜻은 다 좋은 뜻이다.

피난민들 밥 먹이려고, 선신이 되려고, 덕망 높은 스님들의 토론 그리고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던 좋은 뜻의 말들이 결국에는 다 형편없는 꼴이 됐다는 말뜻으로 원래의 뜻이 완전히 변했다.

이 단어들의 공통점이 흡사 우리나라의 현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스러울 뿐이다.

원래 촛불의 거대한 민주화 민심으로 시작돼 우리나라 국민의 본질인 무혈혁명으로 좀 더 나은 사회로 가려 했으나 원래 본질에서 더 벗어나 개판오분전, 아수라장, 아사리판 그리고 야단법석인 형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할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 우리가 추구하였던 최초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된다.

감정적인 것보다는 이성적으로, 분열화보다는 단합으로, 개인과 소인 그룹보다는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마인드를 국가지도부에서부터 전 국민까지 가져야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민의 민생안정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더 이상의 개판오분전, 아수라장, 아사리판 및 야단법석 등의 혼란은 안 된다.

이들의 원뜻인 “국민을 위한 민생회복”으로 매진해야 한다.

/강길선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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