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빈국이라는 국가적 가난함을 겪은 세대들은 그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은 그 가난을 겪었지만 자신의 자녀들만큼은 그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자녀들에게 출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한 인고의 길을 자청했다.

자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교육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삶을 다 바쳐서 자녀들을 가르쳤다.

그로 인해 그 시대에 배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출세의 길을 들어서는 일이 많았다.

그와 함께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많이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은 어렵다.

최근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것처럼 고소득자와 저소득자의 소득격차는 더 벌어져 소득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자녀를 훗날 성공한 고소득자가 되게 하기 위한 부모의 마음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그 환경이 얼마간 변했을 뿐이다.

과거에는 인구 급증으로 가족계획을 권장할 만큼 다자녀 시대였지만 이젠 반대로 출산 장려를 하지 않으면 국가의 장래가 어려워질 만큼 출산율이 저조한 시대가 되었다.

물론 과거는 성윤리의식과 함께 자녀출산이 연관되어 있었지만 현재는 성의식의 변화로 인해 법에도 성적자기결정권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남녀의 성관계는 개인의 쾌락을 위한 것으로 인식이 되어 출산과의 관계가 희박해져 있다.

더욱 양육비 부담과 여성사회 활동으로 인해 경력단절에 대한 어려움으로 인해 출산을 꺼리고 있어 출산율이 가임여성 1명당 0.

98명으로 한 가구에 한 명의 자녀시대가 되었다.

그로 인해 자녀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하는 경향으로 인해 더욱 교육열이 과열화되어 양육비 가운데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윌름 아데마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고용노동사회국 사회정책과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고득점에 사교육이 집중돼 있어 수능에 대한 과도한 초점이 사라지면 사교육에 대한 수요도 사라진다고 유추할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대학입시는 주부들의 전쟁처럼 되어 입시를 앞둔 주부는 자녀와 같은 패턴의 생활이 이루어질 만큼 초미의 관심이 되어있다.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 역시 그러한 관심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과정을 거치며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대학입시제도는 1945년 처음 도입된 이래 18번에 걸쳐 크게 달라졌고 사소하게 달라진 것까지 포함한다면 40차례 이상 달라졌다.

평균 4년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1945년 대입제도가 도입되어 정부가 정한 시험날짜와 시험과목에 의해 각 대학이 시험문제를 출제하여 학생을 뽑았으나 입시부정문제로 인해 1954년 대입 국가연합고사와 대학별 고사 등 2단계 대입제도를 도입했다.

1962년 입시비리를 없애자는 취지로 국가고사를 통과한 자들에 대한 대학별 고사를 시행하였으나 미달사태가 초래되어 1963년 기존 대입 국가연합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병행했다.

1969년 대입 예비고사 합격자가 대학별 본고사를 보는 제도로 시행하면서 1973년 내신제가 병행되었다.

고액과외가 성행하면서 1980년 과외전면금지를 내걸고 본고사를 폐지하였다.

1981년 국가보위입법회의는 학력고사 내신점수를 합산하여 선별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다시 1994년 종합적 고등사고능력을 평가한다는 취지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도입되었다.

1997년 수능과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대학별 고사점수를 반영했다.

2002년 선택형 수능이 도입되어 직업탐구영역이 신설되었다.

2008년 ‘등급제’가 도입되어 수능성적은 등급으로만 제공했다.

2009년 수능부터는 표준점수, 백분위가 부활하여 입학사정관 전형과 사회배려자전형이 활성화되는 등 입시방법이 다양해졌다.

대입전형을 간소화하자는 기치아래 2013년 기존 입학사정관제도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확대되었다.

2015년부터 학교 외부 실적(공인어학성적, 교외수상 등)을 평가에서 배제한 학생부 중심평가가 이뤄졌다.

그러나 학종 역시 최근 조국사태와 함께 불거진 돈과 권력, 인맥이 있으면 유리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으로 다시 개선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법은 국가의 질서와 안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은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서있다면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

좋은 법을 만들어도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있다는 말처럼 법을 교묘하게 피하여 자신의 이익을 만들어가는 자들이 있는 한 법은 더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과연 법만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입시제도’를 의인화해서 하소연을 들어본다고 가정한다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나는 ‘대학입시제도’입니다. 나는 74년에 걸쳐 18번의 대수술을 받았고 작은 수술을 합한다면 40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금 만신창이가 되어서 이제 얼마나 더 수술을 받아야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수술을 잘 받았다고 해도 모두가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얼마간의 불만족한 자들이나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이기적인 행위로 인해 사회문제가 되어 다시 수술대에 올라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저소득층, 돈 없고 배경도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수술하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일부 힘과 배경과 돈을 가진 자들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이번에도 수술을 한다고 하는데 이제 더 이상 수술이 필요 없는 마지막 수술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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