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주위 모인 벌 나비 그림으로 연상
스승 가람 이병기 선생과 추억 수록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최승범 원로시인의 ‘화시’가 출간됐다.

하지만 예상했던 그림은 없다.

하지만 시인의 절묘한 표현은 마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천지가 발칵 뒤집힌 것 같다 무더기 무더기 향기롭구나/ 벌 나비 꽃 향내 날아 날아서 들고 은은하구나 비늘 돋아난 물결이구나/ 난바다 아숨푸레 먼 까치놀 뜨고’(꽃의 향기 전문) 향기가 마치 세상을 뒤집어놓은 듯 진하게 풍겨나간다.

벌과 나비가 이 향기를 놓칠 수 없다.

꽃의 향기를 맡고 날아 든 이들의 모습은 마치 비늘이 돋아난 물결같이 느껴진다.

꽃이 만개하는 어느 화사한 봄날, 자욱한 향기로 꽃 주위에 모여든 벌과 나비들이 모습이 한 폭의 그림으로 연상된다.

대둔산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어느 하루 맑은 날 대둔산길에 서면/ 꼭이나 마천루 입석대 임금바위 왕관바위 무슨 무슨 기암괴석 허위허위 오를 것 없데/ 웬만큼 뒷짐 지고 거리 두고 바라나 볼 일이데/ 금강구름다리도 쭈뼛거린 바위 능선도/ 밟고 거닐고 타고 앉느니보다/ 웬만큼 뒷짐 지고 바라봄이 창공 구름만치 밝아지는 마음이데’(대둔산길에) 대둔산길은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밑에서 올려본 대둔산은 마천루, 입석대, 임금바위, 왕관바위 등 기묘한 기암괴석 천지다.

구름이라도 살포시 있는 날이면 산신령 뵈러 온 느낌이다.

반드시 정상에 올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뒷짐 지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 창공에 떠 있는 구름만큼 마음도 밝아진다.

한국의 심상에 대해서도 한 편의 그림을 그려낸다.

한국의 심상은 세월 이어 이어 비워 온 마음으로, 둥그런 해둘레의 빛살같은 마음이다.

빈 마음이어서 오히려 넉넉하고 꽃잎도 벙글어 나올 정도로 환한 마음이다.

저자는 이 마음의 숨격을 모아 강강술레의 둥근 춤을 노래한다.

스승인 가람 이병기 선생에 대한 추억도 수록했다.

저자에 따르면 시조를 시적으로 추구하고 이론으로 분석했으며 비평에 기준을 세운 주석가, 계몽적으로 보급한 이가 가람이다.

전래시조에서 찾기 어려운 자연과 리얼리티에 철저한 점은 근대적 시정신으로써 시조 재건의 열열한 의도를 선보였다.

때문에 가람은 전통에서 출발해 그와 몌별하고 다시 시류에 초월한 시조 중흥의 영예로운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가람은 취중 한담도 풍취가 있었고, 풍발하셨다.

이제 그 먼 길에 오른 지 어느덧 수많은 시간이 흘렀고, 저자는 ‘아으’란 단어로 그 서글픔을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날 선인들은 흔히 그림 위에 시도 올리고, 시 위에 그림을 올리기도 했다.

시와 그림을 아울러 생각한 것이다”며 “이번 발견의 호의로 화시 40편을 담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1931년 남원 출생으로 1958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난 앞에서’, ‘천지에서’, ‘자연의 독백’, ‘대나무에게’ 등 다수와 ‘한국수필문학연구’,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 ‘선악이 모두 나의 스승’, ‘남원의 향기’, ‘한국의 소리’, ‘3분 읽고 2분 생각하고’ 등 다수의 수필집이 있다.

2019년 근작 시집으로 ‘팔팔의 노래’와 ‘행복한 노후’가 있다.

정운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만해문예대상, 김현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고하문학관 관장이며 전북대 명예교수로 활동 중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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