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 입학 직후부터 서울 아현동에 있는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1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매 주말은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단지 대학생으로서 마땅히 봉사할 곳이 없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주변의 추천이 있었기 때문에 주일학교 교사를 택했다.

당시 필자는 어머니와 함께 아현동 반지하에서 살았고 필자의 방은 한 평 반쯤에 불과했다.

책상과 책장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공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학생들 서너 명이 앉으려면 불편을 감수해야 했음에도 그 좁은 방은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비록 반지하이고 비좁은 방이긴 했지만 주일학교 학생들과 그 친구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꼭 한 번씩 들러보곤 했다.

주말이면 온종일 학생들로 붐볐다.

필자의 방은 특별한 공간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보면 모이기에는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편하게 얘기를 나누거나 배가 고프면 필자의 집에 있는 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먹을 게 없으면 자기들끼리 라면을 사와서 끓여 먹었다.

처음에는 설거지나 청소 때문에 잔소리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은 나름대로 규칙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 공간에서 많은 아이들이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었고 공부하러 오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서도 잡담하기 위해 찾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친구에 대한 고민은 물론 진로 상담에 이르기까지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에게는 말 못할 고민들을 부담 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필자가 특별한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들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함께 얘기한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진지한 토론도 많았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해 한 치도 물러섬이 없었다.

가끔 그 때 그 학생들을 만나면 필자 역시 토론에 있어서는 한 고집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 조차도 자기들을 존중하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자녀 문제에 대해서는 필자에게 묻기 시작했다.

때로는 자녀들에게 말하지 못할 것도 필자를 통해서 자녀들에게 부탁하곤 했다.

필자가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님들에게 의견을 말했을 때도 부모님들은 많은 부분 수용해주셨다.

자녀들과 직접 대화하는 시간이 많지 않아 자녀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필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자녀들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잘 것 없는 공간에서 서로의 대화는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자살의 충동을 느꼈지만 서로 이야기하면서 성격이 밝아진 학생, 고등학교를 포기하려다 함께 하면서 무사히 졸업한 학생,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나름대로의 꿈을 찾은 학생 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고민이 많다.

하지만 청소년의 고민을 함께 고민해줄 어른도 공간도 마땅치 않다.

청소년들은 교훈이 아니라 대화를 원한다.

그들에게 지식과 교훈을 줄 사람은 많아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고민을 함께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함께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적지 않은 위로와 만족을 얻는다.

대화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어른들이 청소년의 말을 경청(傾聽, 敬聽)할 필요가 있다.

경청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경청하면 경청할수록 우리 어른들이 청소년에 대해 걱정하는 많은 문제들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장,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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