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여인숙화재 국민참여재판
검찰-피고인 그을음묻은장갑
자전거등 간접증거두고 공방
배심원 '합리적의심' 유죄의견
재판부 징역 25년 중형 선고
폐지와 고철 등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던 노인 3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주 여인숙 방화사건의 피고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지난 16일 검찰과 피고인은 ‘직접 증거 없는’ 점을 두고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고 재판은 이례적으로 이날 오전 11시에 시작돼 다음날 오전 1시 30분까지 약 14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검찰과 피고인 측 변호인 간 공방을 지켜보면서 배심원들은 유죄 평결을 내렸고, 전주지법 제1형사부(고승환 부장판사)는 검찰의 주장과 배심원들의 평결을 인용해 피고인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이 14시간 30분이나 진행된 것은 법조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장시간 법리논쟁에 지친 배심원 10명 중 1명이 재판 시작 12시간 만에 귀가하기도 했다.
재판의 쟁점은 직접 증거가 없는 이번 방화 사건에서 간접 증거만으로 김씨의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를 밝힐 입증할 수 있는가에 있었다.
검찰은 사건 현장에서 채증·수집한 증거를 여러 차례 제시했고 피고인 측 변호인은 지체없이 반박했다.
검찰은 핵심 증거로 김씨 집에서 발견된 그을음 묻은 장갑, 탄화물이 묻은 자전거와 운동화 등을 내놓았으나 범행을 입증할 직접적 증거는 아니었다.
검사는 김씨의 과거 2차례 방화 전과를 지적하면서 “사건 당시 여인숙 앞 골목을 자전거로 지나갔던 유일한 인물인 김씨의 여러 물건에서 그을음과 용융흔(열에 녹은 흔적)이 발견됐다”고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변호인은 “어디서든 묻을 수 있는 흔적이다. 이 흔적을 여인숙 방화와 관련지을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며 “어떠한 행위가 없었는데 사건 당시 골목을 지난 유일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방화범으로 몰 수는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최초 화재 발생 당시의 모습을 목격했던 이웃 주민과 관련 증거를 분석했던 광주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에 대한 증인심문에서도 검찰과 변호인 간의 공방은 치열했지만 검찰은 피고인 심문에서 승기를 잡았다.
검사는 애초 전주여인숙에 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가 증거를 제시하자 그제야 간 적이 있다고 인정한 김씨의 ‘오락가락 진술’을 추궁한 것.
이에 김씨는 당일 CCTV에 찍힌 자신의 모습도 인정하지 않은 채 “경찰의 증거조작”이라고 우기는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다.
이어 변호인이 “소변을 보기 위해 여인숙 골목을 들어간 일은 있다”고 피고인을 변호하고 나섰으나 배심원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배심원들은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 측의 ‘퍼즐맞추기에 비유한 합리적 의심’을 지지했고 9명 배심원 중 8명이 유죄 의견을 냈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 재판장 고승환 부장판사는 “고귀한 생명을 빼앗을 행위는 어떤 방법으로도 피해를 복구하기 어렵다”며 징역 2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국민참여재판으로 무죄나 형량을 줄이고자 했던 피고의 계획이 1심에서는 수포로 돌아갔다.
도내 법조계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은 하루 만에 끝내야 하므로 오래 진행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14시간 넘도록 진행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직접 증거가 없는 사건이라 검찰과 피고인 측의 대립이 첨예했던 것 같다. 더불어 재판부와 배심원이 사건을 유심하게 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윤홍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