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쯤으로 기억한다.

그리 가깝지는 않은 어떤 사람이 사진 몇 장을 가지고 필자를 찾아왔다.

돌아가신 분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분으로부터? 당장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한 장은 선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한 장은 선물의 내용이었으며, 나머지 한 장은 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었다.

보낸 사람과 명함이 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장례식 조의금이나 결혼식 축의금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 가운데는 조의금이라면 몰라도 축의금을 돌아가신 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은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지적을 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쓴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화도 받았다고 한다.

누가 보낸 것인지 확실히 해두려고 했던 것이다.

선물을 보내거나 결혼식 축의금이나 장례식 조의금을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 내는 이유는 뭘까? 일반인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위에 있는 분이 그렇게 하고 있다면 더더욱 그 이유가 궁금해질 것 같다.

돌아가신 분이 과거 특정 지역에서 명성을 얻으셨던 분이고, 그 분의 명성으로 높은 자리에 오르신 분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세를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더 큰 의심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자신감과 능력이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그 자리에 오를 수 없었고,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면 그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아버지의 후광으로 그 자리에 올랐고 그 후광이 계속되어야만 자신이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을 세습했을 때 여러 언론에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할아버지 김일성의 외모와 화법을 벤치마킹한다고 쓴 적이 있다.

다른 게 뭘까?   둘째, 뭔가를 숨기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선물을 주거나 축의금 내지는 조의금을 주는 것이 선거법 등에 위반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아버지의 이름은 모두가 알고 있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받은 사람들이 누가 보낸 것이라고 다 알고 있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서도 법망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에 손쉬운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부분의 사람이 다 기억할 정도여야 가능하다.

대부분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쓴다 해도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셋째, 정말 순수한 의미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못다 전한 감사의 표시를 대신 전하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

우리의 미풍양속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위법 여부를 떠나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와 같은 이유로 아버지의 이름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이름과 위세(威勢)를 빌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인은 감히 위와 같은 이유로 아버지의 이름을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합법성 여부를 떠나 윤리적이라는 측면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호가호위(狐假虎威)란 말이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威勢)를 빌려 호기(豪氣)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세력(勢力)을 빌어 위세(威勢)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을 빌어 위세를 부린다면 자가부위(子假父威)가 아닌가? 필자를 비롯해 일반인들은 자가부위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다만 돌아가신 아버지는 마음속에 담아 두고 생각할 뿐이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장,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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