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만에, 12월 27일 치른 공연을 지난해라고 말해야 할 새해가 왔다.

필자는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중학교 무용교사를 하다가 어느 날 소비자운동의 매력에 30여 년을 소비자운동가로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무용교사출신임을 의아해 한다. 

일단 한국무용전공자라면 단아한 쪽머리에 비녀가 어울린 고운 얼굴에 고전적 자태가 흐른다.

그러나 필자는 단발머리와 바지차림에 방송이나 강의현장에서는 소비자권익을 위해 싸우는 쌈닭 같은 강한 이미지로 살다 보니 부채춤을 추고 살풀이를 추는 필자를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그러나 40대 후반이 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도 줄어들고 다시 춤이 추고 싶었고 그래서 만난 인연이 장인숙 교수이다. 대부분 국악이나 무용은 스승에 따라 손동작 발동작 숨쉬기 등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매방류, 한영숙류 등 춤사위를 보면 누구 제자라고 한다.

필자 역시 다시 장 교수의 지도로 무릎굴신에서 호흡법까지 배우기를 10여 년이 되었다. 

저처럼 직장인들은 주로 야간시간에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낮 시간에 배우는 전업주부들은 평생교육원에서 배운다.

또한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 국립국악원 문화학교반을 위해서는 하루 종일 강의가 이루어지고 각 시립이나 도립무용단 또는 학교에 출강하는 제자들은 전문무용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끔은 일본에서도 배우는 제일동포들이 전주를 방문하기도 하니, 매주 주기적으로 배우는 제자들이 얼추 칠십 여명이 되는 듯하다.

사실 대부분 무대는 프로 전문가들이 차지하고 일부야 생활문화인들이 공연도 하지만 비전공자들을 대상으로 또 연령대들도 높은 학생들에게 꼭 앞쪽에서 함께 춤을 추면서 동작을 익혀 무대에 설수 있도록 하시니 대단한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장 교수도 육십, 환갑을 맞이하였다.

서울과 전주 등 전국각지에서 제자들이 만나 ‘축제’라는 명칭으로 지난달 27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환갑기념공연을 하였다. 

옛날과 달리 칠순도 팔순도 아닌, 환갑에 왠 잔치냐고 하지만 제자들의 마음은 달랐다.

더욱이 환갑에는 잔치국수를 대접한다는 생각에 따뜻한 대추차와 떡들을 오시는 관람객들에게 드리는 마음도 절로 우러나왔다.

우리 사회가 평생을 예술과 전통이라는 무대에 헌신한 예술인들이 배고프지 않고 한길을 갈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도 지역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9개 작품에 50여명의 제자들이 춤을 추었다.

어릴 적 춤 한 자락의 인연으로 만난 제자들이 스승께 절하기보다는, 장 교수께서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꽃 한 송이를 나누며 오히려 두 손 모아 감사의 인사와 깊은 포옹으로 무대를 마무리하였다. 

졸작이지만 필자의 ‘모시는 글’은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여기 인생의 사계절이 다른 제자들이 있다. 어린 시절 춤 한 자락의 기억을 간직하고 모였다. 나이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다.

스물에서 칠순까지 일본에서 서울에서 전주에서 그리고 전문무용수에서 전업주부, 직장인까지. 스승과 제자의 흐름에는 경계가 없다.

춤판에는 엄한 스승으로, 돌아서면 엄마처럼 언니처럼 따뜻했다.

우리가 하늘을 나는 새라면, 한량없는 허공이지만 도착해야 할 곳을 찾는다면, 장인숙 선생과 함께 칠순과 팔순 춤판을 기착하고 싶다.’

이 글은 제자들의 마음을 듬뿍 담았고, 해마다 ‘축제’라는 제목으로 무릎굴신이 가능할 때까지 춤추려고 하는 의지를 담아냈다. 
 
/김보금 전북소비자정보센터 소장, 전북무형문화재 15호 호남살풀이 이수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