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다이 시는 인구 약 100만 도시로 일본 미야기 현, 나나키타 강과 히로세 강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소매업과 서비스업에 중심으로 도시경제를 이루고 있다.

2006년 ‘도시 비전’ 정책 수립을 통해 4가지 기본방향을 설정하였다.

첫째는 창조도시, 두 번째로는 교류도시, 세 번째 창조와 교류의 장이 되는 도시기반 만들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숲의 도시를 재구축하는 것이었다.

센다이 시의 숲의 도시는 1909년에 ‘센다이 시오가마 마츠시마 유람의 길잡이’에 사용된 것이 시작이며, 명칭은 마사무네(에도 시대 센다이의 명인)가 수로 정비와 함께 집터마다 유실수를 심도록 하여 성곽 마을 전체가 숲으로 덮여 ‘수호신의 숲’으로 보였다고 전해진다.

1977년에 세다이 시의 느티나무 가로수 거리에 에밀리오 그레코의 조각이 설치하고 ‘조우젠지 스트리트 재즈 페이스벌’ 등 축제와 예술행사 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센다이의 도후쿠 대학은, 1907년에 도쿄 대학, 교토대학에 이어 3번째 제국대학으로 설립 ‘연구 제일주의’와 ‘문호개방’을 학풍으로 수준 높은 학술연구 성과와 인재를 배출하는 배움의 도시이기도 하다.

센다이 시는 도시정책의 하나로 ‘음악의 도시 센다이’를 표방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센다니 국제음악콩쿠르’와 ‘센다이 클래식 페스티벌’을 통해 세계 음악문화의 진흥과 젊은 재능의 발굴을 도모하였으며, 도시재생과 경제적 측면에서 혁신의 음악제로 화제가 되었다.

또한, 1987년 엘파크 센다이 개설과 함께 ‘무대기술 육성강좌’를 기점으로 연극 진흥책을 마련하였다.

이외 ‘창고의 도시에서 만납시다’, ‘센다이 E-브로드웨이’, ‘ART 센다이’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일본의 사사키 마사유키는 “센다이는 지금 문화의 봄이 일고 있다. 이것은 센다이 출신 또는 센다이에 사는 작가가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센다이는 도시적인 것과 들의 자연이 적절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작가의 창조적인 작품생산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온화한 토지의 기후와 풍토, 주민들의 인심, 문인들의 로망 등이 어우러져 센다이를 방문하는 여러 문학자의 청춘과 ‘정신의 요람’이 되었던 거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문화의 ‘배양기’라 할 수 있다. 코어 컴피턴스는 도시가 이루어진 역사라는 시간축, 지리나 풍토적인 공간축에 더해, 인간이 구사하는 다채로운 언어에서 추출된 문화축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 형성되어 있다. 수호신이라 불리는 토지의 정신성, 영적 작용과 인간의 창조적 행위의 결과로 태어난다. 이 문화축에 주목한 것이 열쇠가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센다이 시의 사례를 보면서 “전주는 창조도시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전주시는 일본의 가나자와 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이에 흔히들 전주한옥마을을 가나자와의 전통마을과 비교하며 전주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센다이 시의 사례를 보면서 전주가 센다이 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사키 마사유키가 이야기한 “조상과 많은 시민이 오랜 역사 속에 배양해 온 재산, 본래 토지에 존재한 자연과 고유의 가치 발굴, 또는 재발견이 중요과제”라는 말과 같이 전주시는 조상을 물려준 한옥마을을 도시재생의 창조적 성공사례로 만들었으며, 전주의 문화적 기반인 “소리와 한식 그리고 한지”를 발전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으로 끊임없는 연구와 발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한 그 중심에는 전주시민이 있다.

/이영욱 한국전통문화전당 정책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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