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라고 했다. 

하다 보니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몰랐지만 살아온 삶 자체가 이 일을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 것 같다고도 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는 한옥마을에서 ‘예지인’ 수제도장 작가 라서경씨의 수제도장 전각 사랑이야기다. 

라 작가가 작업하는 조그만 가게 안에는 그 흔한 도장 파는 기계는 없이 달랑 도장을 고정하는 고정대만 하나 갖춰져 있다. 

이걸로도 도장을 만들 수 있을까? 

하얀 종이에 이름을 써주면 그 자리에서 쓱쓱 파준다. 그야말로 예술이다.  

라 작가는 대학을 다니면서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서예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각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대학시절 미친 듯이 서예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저는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교수님의 권유로 그는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각을 공부하게 됐다. 

그 후 한옥마을에서 관련 일을 하는 지인에게 보낸 이력서 한 장이 지금 그가 한옥마을에서 도장을 파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라 작가의 수제 도장에 관심을 가져 줬다. 

너무 쉽게 파는데 어딘지 모르는 자연스러움과 기운이 있다고 했다. 

라서경 작가를 찾는 고객들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 보다 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나이든 사람들은 도장에 무관심 했지만 젊은 사람들은 달랐다. 

손으로 직접 파는 도장을 작품으로 바라보았고 의미를 부여했다. 

너무 자연스럽고 예뻐서 커플도장을 파거나 이제 세상에 나온 자녀를 위해 출산기념으로 준비해 갔다. 

자기들도 어려서 부모가 파준 도장을 성인이 될 때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잘될거야’, ‘늘 건강’, ‘행복가득’, ‘영원’, ‘사랑’, ‘힘내요 당신’ 이라는 글자도 좋아했다. 

누군가에겐 그저 계약이나 서류 작성을 위한 확인용 도장이라면, 누군가에겐 사랑을 전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 부여를 하는 도구로서 도장을 만들었다. 

그는 도장 하나를 사람으로 바라봤다. 

모든 도장은 정적인 글자가 아니라 동적인 글자로 새겨져야 한다고 했다. 

많은 도장들은 도장 안에 글씨가 또박또박 새겨져 있다. 그러나 라 작가의 도장은 틀 밖에서부터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인간은 틀을 깨고, 쭉쭉 뻗어나갈 때 동력이 생기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도장이 아니라 정신이었다. 

도장을 파기 시작한지 20년이 지나고 한옥마을에서는 5년째다. 

앞으로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그의 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정병창기자 wooju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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