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정의(定意)를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Easton)은 이해관계의 조정 및 갈등 해결과 공동체의 목표 설정, 사회가치 실현을 통한 사회발전 도모라고 말했다.

사전을 통해 본 정치의 의미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과연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러한 정치적 정의와 의미에 마음을 두고 정치를 하고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정치 참여이유는 아마도 ‘개인의 이익〉정당의 이익〉국민의 이익’의 공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정치는 권력으로 개인의 이익이 가장 우선한다는 것이 오랜 역사 속에서 증명되고 있다.

지난해 민주당의 이해찬(67)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내가 죽기 전에는 정권을 안 뺏길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죽어도 정권을 뺏기고 싶지 않은 것 일까.

그것은 국가의 권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과거 조선시대에 극렬한 당파싸움은 권력의 독점을 위한 치열한 다툼이었다.

숙종 즉위 후 기사환국 이후에 한 당파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는 “너 죽고 너 다시 한 번 더 죽자” 식이 전개되었다.

남인과 서인으로 대립관계를 이루었던 당파는 임금이 남인을 선택하면 서인이 죽어나가고 서인을 선택하면 남인이 죽어나가는 형태로 피비린내 나는 권력 혈투를 벌인 것으로 집권 당파가 바뀔 때마다 보복성 숙청으로 피바람이 몰아쳤다.

한반도를 한차례 휩쓸고 간 전쟁의 회오리였던 임진왜란은 당파싸움으로 인한 국력의 쇠약함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만큼 권력은 양보할 수 없고 나눠가질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부모형제도 권력이라는 무게 앞에선 한 치의 양보를 할 수 없는 대립적 관계로 조선시대 왕자의 난은 권력을 향한 야망이 비정한 살상을 만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은 반란을 통해 부친 다윗을 몰아내고 왕권을 취득하여 부친의 첩들과 동침하여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현대의 정치 역시 그 당시와 문화적 특성만 다를 뿐이지 권력을 향한 성격은 대동소이하다.

그 만큼 권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매력과 함께 포기하기 어려운 욕망의 대상으로 한 번잡은 권력은 마약과 같아서 중독성을 가지게 되어 절대 놓치려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진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자신을 부각시키기 위해 스스로 자화자찬에 빠지게 된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 24~26일 18세 이상 일본 유권자 992명을 전화 설문조사해 27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길 원하는지를 묻는 항목에서 72%가 ‘원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으면 한다는 응답자는 18%에 그쳤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 만큼 정치인들은 자신의 작은 치적도 극대화시켜 정권을 연장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그러한 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미 모든 통계적 수치에서 그 동안 시행해온 경제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현 정부는 자화자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 정부는 3년째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속하고 있지만 지난해 실질 국내총소득(GDI)은 오히려 0.

4% 감소한 것을 나타났다.

이런 마이너스 증가율은 1953년 국내총생산(GDP) 통계 작성 이후 네 번째로 극히 드문 일이다.

지난해 한국 경제가 가까스로 2.0% 성장에 그쳤다.

10년 전 금융위기(2009년) 당시 0.8%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역시 지난해 한국 수출액이 전년대비 10.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수출이 두 자릿수 감소폭을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3.9%) 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이 우리나라 국가경제와 가계의 중심축을 이루는 40대 고용 상황이 불안하다.

정부가 이달 발표한 ‘2019년 12월 노동시장 동향’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대부분 세대 고용률이 상승한 반면 40대 고용률은 78.4%로 전년도 79.0% 대비 0.6%포인트(P) 하락했다.

실업급여 지급액은 갈수록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자영업자들은 경영악화로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으로 점차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역대 최고 고용률” 경제성장 선방 등으로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역시 정치인 등의 속성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 가지 더 지난해부터 계속된 조국 전 민정수석의 수사와 청와대 선거개입의 수사는 현 정부의 부정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어 법무부장관의 어색한 검찰 인사가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과연 손발이 잘린 검찰총장이 몸통만 가지고 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검찰총장의 실수는 너무 원칙에 따라 행하는 고지식함에 있는 것 같다.

야당의 반대에도 윤석열 총장을 임명한 것은 지난 정부의 문제에 대한 단호한 수사로 현 정부에는 듬직한 우군으로 여겨졌기 때문이고 대통령은 “청와대든 여당이든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하게 임해야”할 것을 당부하였는데 그 말은 단지 ‘립 서비스’로 자신의 임명을 자찬한 말에 불과한 말인데 그것을 곧이 곧 대로 들은 것이 실수였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우군이 할 일이 아니라 적군이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고 엄정하게 했다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도전으로 여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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