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립국악원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27-28편 전통의 새로운 무대화 작업

전북도립국악원 ‘전북의 전통예인 구술사’ 27, 28편이 발간됐다.

27편은 판소리 적벽가, 아쟁산조, 가야금 산조 등 팔방미인 전통예인인 김일구 명인이, 28편은 호남산조춤 예능보유자인 이길주 명무가 선정됐다.

김일구 편은 크게 삶과 예술로 나뉜다.

삶은 소년시절, 청년시절, 서울생활, 전주생활로 나뉘었고, 예술은 판소리의 예술세계, 창극의 예술세계, 기악의 예술세계, 제자육성 등으로 구분됐다.

김일구 선생의 구술사는 삶보다는 예술에 무게를 둬 그 예술세계에 방점을 뒀다.

구술면담은 총10회에 걸쳐 이뤄졌고 추가조사 및 보강조사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김일구 선생은 국악인의 등용문이라 일컬어지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1979년 기악부 장원, 1983년 판소리명창부 장원으로 2관왕을 차지했다.

오늘날 전통예인은 대부분 한 종목만 전공하고 있는데 김일구 선생은 소리꾼으로 판소리와 창극 활동을 했고, 판소리나 창극의 작창, 공연의 대본과 연출까지 했다.

또 기악 명인으로 아쟁과 가야금에 일가를 이뤘을 뿐 아니라 타악기나 거문고도 다뤘다.

이렇듯 다방면으로 뛰어나니 마지막 남은 팔방미인 전통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술사를 보면 김일구 선생은 최고 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다른 사람의 음악을 듣고 느끼고 교류를 할 것을 강조한다.

아울러 최근에는 직장만 들어가면 정년이 보장되고 굳이 공부하지 않고 공연에만 매몰되어가는 후학들을 꼬집기도 한다.

또한 전통음악도 밭에 씨앗을 뿌리는 것처럼 시대에 따라 변형이 되겠지만 전통만은 곧이 곧대로 그대로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기가 있어야 이론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길주 편은 이길주의 삶, 이길주의 예술세계 그리고 호남산조춤 무보가 수록됐다.

1949년 전주에서 태어난 이길주 선생은 초등학교 5학년때 무용학원에서 춤에 입문했다.

이후 최선 무용학원을 비롯해 이매방, 정인방, 김백봉, 배명균, 송범 선생들에게 많은 춤사위와 우리춤의 정수를 익혔다.

대학졸업 후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살품이춤 외 많은 춤을 공부했고, 최선 선생에게 입문 후 채상묵, 김광숙, 고선아 등과 함께 동문수학했다.

최선이 추월에게 배운 살풀이춤, 입춤 형식의 산조춤, 승무, 장고춤, 검무 등을 배웠다.

이후 각종 발표회 등을 통해 이길주의 산조춤이 알려지게 됐고, 특히 1978년 제1회 대한민국무용제에 최선무용단으로 출품한 작품에서 최선 선생의 상대역을 맡아 솔로 산조춤을 추어 극찬을 받기도 했다.

2001년 이길주 무용단을 호남춤연구회라 개칭하고 대외적으로 호남지역에 산재된 춤을 발굴, 보존하고, 호남지역춤 고유의 정서를 담아 그 맥을 전승 발전시키는 작업을 병행함과 동시에 젊은 춤꾼 발굴, 호남춤 뿌리찾기, 사랑방 춤판 등을 열어 지역문화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 이길주 선생은 익산시립무용단 창단에 중추적 역할을 했고, 16년 동안 이끌어오면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한국의 전통무용과 창작작품을 통해 많은 관객들에게 강력한 마력과 풍부한 예술성을 지난 무용가로 평가받고 있다.

또 호남을 중심으로 산재된 춤을 발굴하고 기록을 통해 전승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면서 우리 전통을 새롭게 무대화하는 작업을 거듭하고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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