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나 취침 때도 사람은 움직이며 잠을 잔다.

흔들리지 않으면 꺾어진다.

아무리 높은 빌딩도 좌우로 흔들리며 서 있다.

흔들린다는 것은 곧 살아 있는 것이고 서 있다는 증거이다.

모든 식물이나 생물도 흔들리며 꽃이 피고 성장한다.

바람이나 세상 풍파에 흔들림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비록 삶 속에서 어려움에 처해 조금씩 흔들려도 그것은 똑바로 서기 위한 몸부림뿐이다.

건축 관련 업체도 흔들리며 존재해 왔다.

경기가 좋을 때와 나쁠 때 그때마다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동안 건축경기가 가장 좋았던 때라면 1997년 3월 국가부도위기였던 IMF 이전 때였을 것이다.

IMF가 터지기 전, 각 분야에서는 황금기였고 곳곳에서 많은 건설계획이 세워져 있었지만, IMF 이후에는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갔고 건설관련 직원들도 감원과 감축에 들어갔던 때가 벌써 23년 전 이었다.

그 후 23년이 지난, 제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2020년 지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건물 안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정작 그 건물을 어떤 사람이 설계했는지 어느 업체가 건설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 건물을 구상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을 건축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건축 관련 전문가가 되었는지 그 현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간혹 TV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건축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여름, 꽃 중년 바람을 일으켰던 인기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주인공 도진(장동건)은 우아하면서도 성깔 있는 건축가로 배역 했었다.

그는 집에서 와인과 치즈를 먹으며 건축모형을 만들고 평일 대낮에 카페에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는 여유 있는 건축가 역할이었다.

각박한 생활 속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매우 럭셔리한 삶이었다.

과연 건축가 모두가 그럴까.

2009년 방영한 <결혼 못하는 남자> 속의 지진희가 그랬다.

그는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할 때에도 정돈된 식탁 위에 놓여있는 접시에 묻은 육즙마저 훔쳐낼 정도의 결벽증을 보여 줬다.

압권인 것은 여의도 불꽃축제를 보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 테이블 위에 와인까지 놓고 망원경으로 불꽃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이렇게 드라마에서 건축가들은 한결같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경제력에 여유로운 모습으로 묘사되곤 하였다.

필자도 가끔, 직접 설계해서 지은 주택에서 사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설계한 아름다운 단독주택에서 살지 않고 아파트에서 산다고 하면 실망의 표정을 짓곤 한다.

왜 그럴까, 누구나 건축가라 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디자인과 설계로 멋있는 집에서 살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 대기업체의 건설회사 제외하고 중소기업체의 전문건설업체나 건축설계사무소 사업체 운영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예전에 비해 인건비는 대폭 상승되었고, 외주비도 감당하기 힘들고, 심지어 대학 나온 졸업생들도 건축 관련 분야에서 일하기 싫다하여 나홀로 사무소 운영하거나 가족끼리 운영해야 겨우 유지할 수 있다고 하소연 한다.

지금의 건축인들 과연 드라마에 나오는 건축가들처럼 그렇게 여유 있고 아름다운 직업일까? 몇 년 전, 우리를 첫사랑의 기억으로 만들었던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는 현실적인 건축가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최저임금제에다 52시간 근무시간에 묶여 칼퇴근 하는 시대라서 영화 속 대화가 지금에 와서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의 건축학과는 4년제가 아닌 5년제 과정으로 학제를 개편했다.

재학시절 며칠간 밤낮으로 졸업작품을 준비해야 하고 졸업하면 자신의 앞길을 보장받을 건축계의 일자리가 녹록치 않다.

학과 과정이 힘들고 기간이 길기에는 6년제 의과대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지만, 졸업한 후에 그만한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건축업계의 현실이다.

건설 현장마다 인건비 줄이기 위해 값싼 외국인 인부를 고용하여 운영하고 있고, 건축설계사무소 역시 나날이 늘어나는 인허가 서류와 복잡한 허가 절차 과정, 어렵게 취득한 건축설계 공인된 면허가 어떤 때는 구속의 사슬이 되기도 한다.

요즈음 건축학과 졸업생들 구인하기도 힘들고 그나마 설계사무소 들어와 몇 년 배우고 나면 더 좋은 여건으로 가버리는 것이 요즈음 추세이다.

6년제 나온, 생명을 다루는 의사나 약사에 비해 건설현장에서 근무하는 건축직 업무가 더욱 위험한 일을 하는 직업이 아닌가? 이럴 진데 5년제 대학 나와 3년 이상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고, 바늘구멍 건축사 시험통과 되어도 특별한 댓가를 보장해 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존 건축계의 권익을 보장해 줄 안전장치가 없다.

드라마처럼 그렇게 멋진 건축가 자화상이 될 수 없는 우리 건축계의 현실이 부끄럽고 슬프기만 하여 고민스런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환경 창조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가끔은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흔들리면서 휘어질지라도 부러지지 말고 꿋꿋하게 힘든 세상 살아가기를 빌어본다.

/신세대건축 추원호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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