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취준생에 찾아온 비극

검사사칭 男 금융사기 연루
협박 11시간 통화 서울까지가
430만원 전달후 극단적 선택
경찰 "아직 용의자 특정 안돼"

순창에 사는 김모씨(28)는 지난달 20일 모르는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남성은 “여기는 서울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팀 팀장을 맡은 김민수 검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당신 계좌가 대규모 금융사기에 연루돼 일단 돈을 찾아야 한다. 수사가 끝나면 돌려주겠다”고 김씨를 속였다.

김씨는 수사관이라는 또 다른 남성과도 통화했다.

이들은 이메일을 통해 보낸 조작된 검찰 출입증과 명함 사진을 보내는 등 치밀함을 보였고 김씨에게 전화를 끊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본인 전화 꺼지면 바로 수배되고 체포영장 나가면 2년 이하 징역 처벌을 받는다. 지금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 몇 프로예요? 충전하시면서 조사받으세요”라고 협박했다.

또 “3일 동안 조사를 받으셔야 하므로 간단한 세면도구 챙겨오셔야겠죠.

본인의 혐의점이 발견된다면 구속된 상태에서 최대 법정 90일 동안 구속 수사를 (받는다)”고 했다.

이들의 협박에 질린 김씨는 결국 정읍의 한 은행에서 현금 420만원을 찾았고 김씨는 KTX를 타고 서울의 한 주민센터에 돈을 가져다 놓았다.

김씨는 이들이 시키는 대로 서울 여의도 카페에서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사기단은 김씨의 돈을 챙겨 달아났다.

김씨가 이들과 통화한 시간은 장장 11시간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더는 김씨 전화를 받지 않았다.

뒤늦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 김씨는 혼자서 괴로워하다 이틀 뒤인 지난달 22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씨 부모는 경찰에 진정서를 내며 “아들이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구보다 착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기단을 하루빨리 잡아줄 것”을 호소했다.

당초 단순 변사 사건으로만 알았던 경찰은 장례식 이후 김씨 휴대전화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정황을 발견한 유족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했다.

12일 순창경찰서는 “취업을 준비하던 2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그를 속이고 수백만원을 빼돌린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용의자가 특정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숨진 김씨는 대학 시절 희소병인 ‘샤르코 마리 투스병’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친구를 돕던 미담의 주인공으로 확인됐다.

김씨의 아버지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피해예방과 처벌강화를 호소했다.

그는 ‘내 아들을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며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이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국민 여러분께 나누고,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한 것”이라고 청원 취지를 밝혔다.

또한 “아들은 평소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여려 대학에서도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고 4년간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며 우애를 쌓아 대학 신문에 실리기도 했던 아이”라며“천지에 널려 있는 보이스피싱 사례를 보고도 이 사회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 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피해 사실을 널리 알리고 가까운 이웃과 가족들이 이런 분통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윤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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