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드라마에서 신데렐라 여주인공이 사는 곳의 단골로 나오는 장소가 옥탑방이다.

드라마를 찍었을 때 배경으로 보이는 야경이 로맨틱해서 촬영장으로 채택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여주인공이 옥탑방에 산다는 설정을 보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옥탑방은 권력의 최하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설명된다.

다른 집을 다 내려다보는 옥탑방의 가격이 싼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공간의 위계 라는 것은 그렇게 시각적인 관계성만을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옥탑방의 가격이 펜트하우스와 다른 이유를 찾는다면 보안상의 문제와 연관시켜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펜트하우스는 로비부터 시작해서 방까지 가는 데 수 차례의 보안 게이트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에서 비싼 주거 중 하나인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들은 짜장면을 배달 주문하면 수 차례의 수위 검문받다가 짜장면이 다 불어서 못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이처럼 여러 단계의 보안상 차폐는 그 보안벽 너머의 공간을 더 중요하게 만들어 준다.

건축 역사를 살펴보면 북경의 자금성이 대표적인 예다.

자금성은 중국의 황제가 사는 궁전이다.

그 구조는 여러 겹의 벽체가 겹겹이 둘러 싸여진 공간 구조를 띠고 있고 황제는 가장 가운데 높은 곳에 앉아 있다.

그리고 평면은 좌우 대칭형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 경복궁의 좌우 비대칭과는 다른 개념이다.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신이 조선 시대 때 중국 황제를 만나러 가는 사신이라고 생각해 보자.

사신이 맨 처음 자금성의 커다란 문을 통과할 때 좌우로 창을 든 문지기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과해서 들어가면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마당이 나온다.

그리고 개천 같은 곳을 다리를 통해 건너간다.

기독교에서도 사람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요단강을 건넌다‘라는 표현을 쓴다.

불국사에서도 절 앞에 백운교, 청운교가 있다.

성당에 들어갈 때에는 성수를 뿌리고 들어간다.

이처럼 수공간(水空間)은 확연히 다른 공간으로 건너갈 때 쓰는 건축적 장치이다.

자금성을 방문한 사신은 자금성 안의 다리를 건너면서 자신이 성스러운 곳으로 들어간다고 느꼈을 것이다.

건너고 나면 또 다른 문이 기다린다.

삼엄한 경비를 지나서 들어가면 또 다른 공간이 나오고 다시 또 다른 문이 나온다.

이러한 여러 차례의 담장을 통과해서 안에 들어가서 만난 커다란 광장에 신하들이 도열해 있고, 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황제가 앉아 있다.

아마도 커다란 용 문양 조각이 있는 계단의 맨 꼭대기에 앉아 있을 것이다.

여러 번의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더 중요한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자금성 공간 구조의 노림수이다.

그리고 그 안에 황제를 방문한 사신 자신은 가지 못하는 정중앙에 앉아 있는 황제가 정말 대단한 권력가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신은 황제를 직접 쳐다보지 못하도록 고개를 숙이라고 한다.

오직 황제만이 사신을 내려다볼 수 있다.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은 그 만큼 위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사신은 이미 외교적 협상도 하기 전에 기가 눌려 버렸을 것이다.

자금상의 여러 겹의 담장처럼 보안상의 단계가 많을수록 안쪽 공간은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공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도 회장님 방 앞에는 비서실이 있다.

방문객은 비서실을 통해서만 회장실에 들어갈 수가 있다.

회장님을 더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공간 구조이다.

이 밖에도 사람들은 회장에게 직통 전화를 할 수가 없고 전화를 하면 비서가 받고 비서가 회장실로 연결해 준다.

이처럼 반드시 비서전화를 통해서만 연결되는 전화 시스템 등이 이와 동일한 맥락의 장치이다.

이런 관점에서 옥탑방은 옆집 옥상에서 뛰어서 넘어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보안이 전혀 안 되는 취약한 공간이다.

그 공간에 들어가는 게 쉽다는 것은 그 만큼 주요한 공간이 아니라는 뜻이며, 동시에 위계을 가진 공간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넘어 들어갈 수 있는 옥탑방은 펜트하우스와는 달리 가격이 높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공간의 디자인은 위계의 창출 및 재분배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건축가들이 도시 구조를 디자인하고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향후 수백 년간의 위계 구조를 구성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라인 종합건축사 사무소 김남중 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