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중 세종대왕은 많은 공적을 남긴 성군이다. 집현전을 설치하여 우리나라의 글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만들었고 정음청을 중심으로 불교 경전을 한글로 번역시켜 그 뜻을 백성과 함께 하고자 했다. 또한 조선 실정에 맞는 농법서인 농사직설(農事直設)을 만들어 농업의 발전을 이끌어내고자 했으며 민족의 음악을 더불어 아끼시고 귀히 여겨 박연으로 하여금 궁중음악인 아악(雅樂)을 정리하게 했다.

이러한 성군의 시절에도 전염병(疫病)은 있었으니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 전염병의 350회 전체 원문 중 10회의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기록은 세종 2년, 6년, 12년~16년, 18년~19년, 25년~26년의 해로 참으로 적지 않은 환난을 겪은 성왕이었다. 

세종 2년, 첫 전염병이 돌자 세종은 '서울과 지방에 전염병이 성하게 유행한다하니 소재지 관리로 하여금 성의를 다하여 치료하여 죽은 자가 나지 않도록 하라' 하였고 세종 14년에는 각 도의 감사에게 '민간에 전염병이 발생하면은 구제하여 치료해주라는 법의 조항을 상고하여 구료(求療)해 살리도록 마음을 쓰라' 전지(傳旨)하였다. 세종은 즉위 후 전염병이 돌자 혼신을 다해 사망자가 나오지 않게 지시했으며 더불어 법을 만들어 치료하고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를 절실히 표명하였다.

또한 세종 16년에는 '외방(外邦)의 유행. 전염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방문(方文)으로 써서 주지시키도록 하라' 명을 내렸는데 이는 각 고을의 관직을 맡은 이들에게 현장에 직접 가서 치료법을 알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백성들에게 향하는 긍휼(矜恤)이 닿는 성군의 마음이었고 당시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하는 지혜로운 성왕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세종 18년에는 예조가 간청하기를 '전염병으로 죽은 자의 가족을 살피게 쌀과 면포를 주게 하소서' 상소하자 이에 그대로 세종은 명을 내려 실행하도록 했으며, 세종 19년에는 황해도에 여러 병이 전염됨을 염려하여 '유명한 의원을 보내어 도내 의학생에게 교류하고 구료하는 방법을 견습(見習)시키라' 하교하여 성왕의 의지를 전했다. 이처럼 세종은 치료에 국한하지 않았으며 예방을 위한 계획도 만들고 실천했던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많은 시련을 겪고 있다. 잊고 싶은 과거의 전염병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금 나타났지만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 자주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자신을 위하고 모두를 위한 예방의 노력에 필사(必死)를 다하고 있다. 

엄청나게 늘어난 대구 지역의 확진자 치료를 위해 전라북도는 병원과 의료진들을 함께 나누었으며, 대구의 거리거리에 대한민국 각지의 119구급차가 한걸음에 달려와 행렬을 이루며 환자를 빠르게 치료 장소로 이송하고 있다. 다양한 SNS에서는 '힘내라 대구.경북', '힘내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우리 국민들은 전염병에 승리할 수 있다고 함께 승전가를 불렀다. 

전염병 감염을 막기 위해 입은 방호복에 지치고, 부족한 수면에 힘들어하는 우리의 의료진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들의 이마에 붙인 반창고는 차마 우리들의 심장에 눈물을 머금게 한다.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겨낼 것이다. 600여년 전 세종대왕과 선조들처럼 굳굳하고 의연하게 말이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 민족은 항상 서로를 아끼고 위로하며 승리했다. 

세종실록56권 세종14년 4월23일

" 非獨疾疫者, 流離絶糧之人, 悉訪以啓 <전염병에 걸린 사람뿐 아니라, 유리(流離)하여 양식이 떨어진 사람들도 죄다 찾아서 아뢰라>"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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