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골제 수문추정지 시굴
제방서 1.1~1.4m 지점확인
제1수문 수거여 제내지역
호안석축시설 잔존등 확인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김제시(시장 박준배)와 전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선행)이 올해 4월부터 시행하고 있는‘김제 벽골제 수문 추정지(수여거)’시굴조사 결과 벽골제 내부의 용수를 외부 경작지로 공급하는 대규모 도수로가 확인되었다.

김제 벽골제(사적 제111호)는 삼국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까지 이용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최대의 저수지로, 그동안 7차례의 시·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바 있다.

이를 통해 제방과 수문의 규모와 형태, 축조방식과 우리나라 고대 토목기술의 양상과 변천과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금번 조사에서 김제시는 제 1수문 수여거에 대한 자료 확보를 위해 김제시 신덕동과 장화동 일대‘무네미’로 불리는 수문 추정지(수여거) 시굴조사를 추진하였다.

시굴조사 결과 제내(堤內)지역(저수지의 안쪽)에서 대형의 판석으로 바닥시설을 만든 정교한 구조의 대규모 도수로(導水路)와 도수로 보강시설, 호안석축(護岸石築), 도수로 주변의 도로유구와 각종 생활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제외(堤外)지역(관개지역)에서 자연지형을 이용한 대규모 방수로의 존재도 파악할 수 있었다.

도수로는 현재의 지표아래 1.1 ~ 1.4m 지점에서 확인되었으며, 규모는 동서 길이 33m, 남북 너비 6.7 ~ 9m, 도수로 남쪽과 북쪽 보강시설의 너비는 각각 7.4m내외이다.

도수로와 보강시설을 포함한 전체 너비는 최대 24m에 이른다.

도수로의 바닥은 0.9 ~ 1.5m 크기의 대형 판석을 깔았고, 대형 판석 사이는 작은 판석이나 할석을 다듬어 빈틈없이 메꾸었다.

또한 도수로의 남쪽 보강시설 끝에는 호안석축시설이 일부 잔존하고 있다.

도수로는 시굴조사 범위 바깥인 동쪽방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어, 현재 확인된 규모보다 휠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수로는 출토유물을 고려했을 때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축조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사단은 이번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도수로가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발굴조사 된 고대 ~ 중세의 도수로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클 뿐 아니라, 축조방법도 정교해 우리나라 농업고고학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시 관계자는 “도수로가 확인된 지점은 현존 벽골제 제방으로부터 원평천을 가로질러 약 1.3km 북쪽 지점에 위치해, 이를 포함하면 벽골제 제방은 현 제방 2.5km에 1.3km를 더하여 3.8km에 이르게 된다.

해당 조사는 사적 제 111호 김제 벽골제의 규모와 성격 등을 파악하는데 큰 진전을 이루는 계기로 이를 바탕으로 정밀발굴조사를 추진하는 한편 벽골제와 연계하여 체계적인 보존 및 정비계획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김제=류우현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