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옥 첫 시집 '길' 출간 동양적 사고-불심
일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 잔잔한 감동 전해

오랫 동안 대학강단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던 엄정옥 시인의 첫 시집 ‘길’이 발간됐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중심으로 외국작품 분석에만 익숙했던 시인은 뒤늦게 시 창작에 몰두하더니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시집은 시인이 어릴 적부터 산사의 염불소리에 잠을 깼던 기억을 이어 그 마음속에는 항상 불심과 동양철학의 시심이 내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안도 문학평론가는 “엄정옥은 성찰의 시인이다. 여러 현실과 부딪치면서 바람직한 삶은 향한 느낌을 엮어낸다”며 “엄 시인의 시는 숨겨진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글이어서 감동을 준다. 그의 시가 진정한 맛을 지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즉 누구보다 감성이 풍부함을 알 수 있다.

시인의 시에는 가슴 속에 반성적 성찰이 물결침을 알 수 있고, 자기 응시를 통한 깨달음이 흥건한 정을 자아냄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자기감정이 최대한 억제된 상태에서 만들어진 여과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안도 평론가는 “엄 시인의 시는 한마디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란 걸 보여주는 시다”며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매우 동양적인 사고 즉 불심과 음양학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일상은 모든 사실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는 일이다”고 밝혔다.

시인의 시가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신보다 더 큰 절망을 짐 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유독 크다는 데 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다.

엄 시인은 생각을 바꾸는 인식의 전환으로 삶을 애써 합리화한다.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기운도 움트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본래의 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엄정옥 시인의 시들이 잔잔한 교훈과 감동을 주는 것도 여기에 있다.

또한 시인은 사랑을 받고 베풀고 싶은 사람의 의지를 표현한다.

보편적인 삶과 감정을 단순한 공통성에 의존하지 않고 진실한 경험으로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혼자 걷는 길이다/ 칸트나 하이데거/ 노자와 장자와 동행할까/ 혼자 걷는 길은/ 나를 만나는 길/ 내면의 나와 걸어보다’(시 혼자 걷는 길 중에서) 시인이 제시하는 길은 혼자 걷는 길이며, 혼자 걷는 무위자연의 길이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내면의 길과 인생길을 의미한다.

칸트나 하이데거, 노자와 장자와 동행하는 길과 나의 너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마음을 열고 꽃도 보고 새도 보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며 걷는 길은 내면의 길이다.

인생길에서 동반자가 없는 무위자연이라고 한 것은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이므로 자신의 내면에서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전주고와 전북대 대학원, 조선대 대학원을 졸업한 시인은 원광대 영문과 교수, 미국 펜실베니아 교환교수 등을 지냈다.

원광대 출판국장, 인문대 학장, 교수협의회장, 한국로렌스학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전북지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원광대 명예교수다.

저서로는 ‘로렌슨의 이원론적 문학세계’, ‘영국 문학사’, ‘로렌스 서한집 번역본’, ‘미국 고전문학 연구 번역본’ 등이 있다.

황조 근정훈장, 향촌문학 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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