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에는 부모님들이 자녀의 가슴에 명찰과 함께 손수건을 달아주시는 관행이 있었다.

가슴의 손수건은 거의 입학의 상징이다시피 했다.

당시는 손수건도 흔하지 않았고 화장지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어린아이들은 콧물이 나오면 옷소매로 훔치곤 했다.

옷소매는 항상 콧물로 젖어 있었다.

이 정도면 손수건을 달아주셨던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손수건을 달아주신 걸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옷소매 대신에 손수건으로 콧물을 잘 닦을 수 있기를 바란 것 같다.

그 손수건에는 이제 학교에 들어가는 어린아이에 대한 걱정과 기대가 묻어 있었다.

요즘 학부모도 손수건만 달아주지 않을 뿐 그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달 30일, 21대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시작됐다.

당선자들은 국회의원 신분이 되었고, 가슴에는 저마다 국회의원 배지, 소위 금배지를 달고 등원할 날들만 기다리고 있다.

초선의원들은 입학하는 학생들만큼이나 기쁘고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재선 이상의 의원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이 선출한 국회의원을 국회에 보내는 국민의 마음은 어떨까? 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부모의 마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21대 국회의원은 좀 다르겠지”라는 기대와 “일도 안하는 동물국회, 식물국회 어디 가겠나?”라는 우려가 교차할 것이다.

어쩌면 초등학교 입학생 학부모보다 걱정이 더 클 수도 있다.

국민의 기대와 걱정은 “제발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참으로 소박한 바람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국회가 해결해야 할 최대의 난제가 되어버렸다.

“제발 싸우지 말고 일 좀 하라”는 바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첫째는 “싸우지 말라”는 것이며, 둘째는 “일 좀 하라”는 의미이다.

종합하면 동물국회 내지는 식물국회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하다 보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토론에 그치지 않고 폭력과 파괴로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 국회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식물국회로 만드는 것이 동물국회보다 비난가능성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식물국회가 동물국회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는 식물국회로 만들 수 있는 원인을 제도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소수당의 의견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국회를 완전히 정지시킬 정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행이도 더불어민주당에서는 21대 국회 제1호 법안으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한 국회법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회의원이 국민을 위해 아무리 좋은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이 법안이 국회에서 심사되지 않고 통과되지 않는다면 허공의 메아리와 다를 바 없다.

매월 국회가 열리고 발의된 법안을 강제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21대 국회 1년 차인 올해 정기국회 전까지는 반드시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

토론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최후에는 다수결원칙에 따르는 국회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야당도 반대할 명문은 없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고 관행이 확립된다면 국회는 동물국회니 식물국회니 하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21대 국회는 국민을 걱정시키는 곳이 아니라 국민의 기대를 받고 그 기대에 부응하는 곳이었으면 한다.

21대 국회는 역대 그 어느 국회보다 일을 가장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기 바란다.

국민의 소박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초등학교 입학식 가슴에 달아준 손수건이 금배지를 대신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이로문 법학박사 민주정책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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