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국립현충원에서 친일파 무덤을 파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진 의원은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친일파를 현충원에서 파묘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며 “작년까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친일파 파묘’ 법률안이 통과가 안 됐다”고 했다.

국립현충원에는 친일파들의 창군 원로 10여 명이 묻혀있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대한민국재향군인회는 "친일청산 문제는 아직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 곳곳에서 갈등현상이 노정되고 있는 상황" 이라며 "일부 정치인들이 편향된 시각의 역사적 사실을 기정사실화해 '현충원에서 파묘 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국민 선동이며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역사 뒤집기'" 라고 비난했다.

그런데 요즈음 나라를 지켰다는 주장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 살아있는 백선엽 씨다.

일본에서 발행된 백선엽 씨의 책에 '조금 후회스럽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친일행적을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해방 후 창군에 참여하여 김일성의 불법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에서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키고 공산화를 막아낸 전쟁영웅으로 알려져 있다.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살려낸 전쟁영웅이라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달리하면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독립군을 잡던 친일파들의 군인들이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과거의 잘못된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의 옹호론자들은 이분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없었다는 주장으로 호국영령을 모욕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대부분 보수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며 파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예전에 자신이 친일파였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잘못된 일이었음을 시인하면서 속죄한 사람이 있다.

바로 홍익대 총장을 지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이항녕 박사이다.

그는 일제 시절 경성제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봐서 2차례에 걸쳐 군수직을 역임했는데 당시의 군수는 꽤 높은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해방 후 그는 사찰로 내려가서 낮에는 근처 학교로 가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밤에는 사찰에서 반성과 수행을 하며 근신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수필, 소설, 기고문을 통해서 반복해서 자신의 친일행적을 사죄했다.

어떤 언론인이 이항녕 박사를 만나서 사실 군수 몇 년을 지낸 것을 가지고 친일파로 자처하는 것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자 이항녕 박사는 서슴없이 명쾌하게 '친일파' 정리를 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민족의식도 없이 단순히 입신출세하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식량 공출이나 노무자 징용, 학병 권유, 징병제 독려 등에 대한 방침이 도청 지방군수회의에서 결정이 되면 다시 면장 회의를 소집하여 그 내용을 하달하고 독려했다. 결국,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셈이다.’

이항녕 박사는 관(官)에 몸담았던 입장에서 친일파를 시인하고 속죄하였지만, 호국영령이라는 군인으로서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사람들의 친일행적에 대한 시인과 속죄를 들어본 일이 없다.

다른 의미에서 호국영령을 인정하여 국립현충원에 있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지라도 이들의 과거 친일행적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좀 더 현명한 입장에서 판단하여 국민의 의견을 토대로 이번 기회에 과거사를 깨끗하게 정리해 갔으면 한다.

그리고 진정한 호국영령들이란 전쟁터에서 작전을 지휘한 지휘관들은 물론이겠지만 말없이 전투에 참여했다가 산화한 이름 없는 장병이었고 일제강점기하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투쟁하는 독립군을 토벌했던 친일파 군인들 역시 대한민국에 씻지 못할 과오를 남겼기에 6월의 현충일과 6·25전쟁 발발일을 맞이하면서 이번 기회에 과거사를 확실하게 정리하여 민족정기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전주예총 이경로 사무국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