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탁경률씨 "고령 노인들
무더위-강추위에 걸음어려워
마을진입구 야간사고위험커
보훈요양원 조속한 건립희망"

“호국용사촌 마을 입구에 버스승강장도 없어요. 회원들이 70~90대 고령인데 무더위와 강추위에는 한 걸음 옮기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현충일을 목전에 둔 4일 전주 국가유공자 호국용사촌 탁경률(71) 회장의 하소연이다.

탁 회장은 월남전에 참전,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결과로 두 다리에 장애를 입어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다.

탁 회장은 “고령의 노인들이라 병원에 갈일이 많은데 버스 승강장도 멀고 그나마 비가 오면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하는 실정이다”며 “시내에 있는 승강장처럼만 해주면 좋겠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6월 호국보훈의 달이라고 하지만 말뿐이다. 위문의 발걸음도 뜸한지 오래됐고 지금 이렇게 대한민국이 잘살게 된 것에 기여한 우리들이 잊혀지는 것이 너무 서운하다”고 말했다.

전주호국용사촌은 지난 1970년 7월10일 전북무용촌이라는 명칭으로 전주시 덕진구 여의동에서 22명의 중상이자가 모여 처음으로 설립됐다.

이후 1981년 12월12일 덕진구 원동으로 집단 이주 뒤, 2020년 현재는 6.25 참전용사 김녹준옹(92)을 비롯한 중상이자 6세대와 15세대의 미망인 등을 포함해 21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은 호국용사촌 탁경률 회장을 비롯, 국가를 위해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한 유공자 및 배우자, 미망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국가에 대한 희생으로 생긴 장애와 고령인 이들의 생활은 현재 소액의 보훈연금으로 이뤄지고 있다.

호국용사촌 임동석 사무장(78)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했다. 한창 때인 20대 초반에 그랬으니 성한 몸으로도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데 장애의 몸으로 살아온 지금까지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우리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고 사람은 명예를 먹고 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제 백구쪽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입구가 좁아 야간에는 사고의 위험이 크다. 관계 기관에서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다. 우리들이 거창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고 하소연 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관심과 온정은 갈수록 사라지며 점차 잊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과거처럼 지자체, 기업, 단체 등이 호국보훈의 달이나 명절마다 이들을 위문하는 등 관심을 보이는 일은 이제 손으로 꼽을 정도다.

탁 회장은 “위로의 발길이 갈수록 줄고 있으며 한 번도 찾지 않는 해도 있다. 이제 큰 기대도 하지 않는다”며 “과거 지자체나 군부대 차원의 상이용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고마움을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6. 25 참전 용사 김녹준 회원은 92세다. 전북에는 보훈병원이 없기 때문에 양질의 위탁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많이 있었으면 한다”며 “전북보훈요양원이 설립 진행중이라고 알고 있다. 고령의 회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완공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부탁하는 기자에게 탁 회장은 “상이용사를 비롯한 국가유공자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명예를 먹고 산다”며 “보람된 희생이었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달라”고 강조했다.

/윤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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