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란 말은 본래 콩을 떨어낸 껍데기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눈을 가려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상징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사람이 특정한 감정에 사로잡히면 이성적 분별을 통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지배되어 행동하게 되는 것으로 이러한 특정한 상황을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도 자신만 모르는 일을 사람들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라고 표현한다.

보통 남녀가 사랑에 푹 빠져있을 때의 상황에 많이 사용한다. 인간의 대사작용에 사랑의 콩깍지를 만드는데 관여하는 호르몬이 정말 있다고 한다. 연인간의 사랑을 할 때 행복과 열정, 흥분, 긴장 등의 감정을 유발시켜 사랑의 콩깍지에 관여하는 것이 바로 ‘페닐 에틸아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이라 한다. 이것이 분비되면 이성은 마비되고, 연인에 대한 생각과 사랑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한다.

‘님이란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가 있듯 사랑과 증오는 서로 쉽게 바뀌는 감정으로 말 그대로 점 하나차이로 사랑과 미움의 관계가 된다고 한다. 

이처럼 사랑과 증오가 사실상 동일한 감정이라는 사실이 뇌과학 영역에서 증명됐다. 영국 런던대학 세미르 제키 교수 팀은 남녀 17명을 대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의 사진을 각각 보여주면서 뇌 활동의 변화를 뇌 스캔 촬영사진으로 조사했다. 그러자 두 경우 모두 뇌 과학자들이 ‘증오 회로’라 부르는 뇌 부분을 활성화시켰다. 증오 회로가 활성화되면 공격적 행동이 유발되고, 성난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작동이 시작된다. 이러한 ‘증오 회로’에는 뇌의 피각-섬엽 두 부위가 포함된다고 한다. 피각은 경멸-혐오의 감정, 그리고 행동을 취하는 작동 시스템과 관련이 있고 섬엽 부위는 뇌의 고통 반응과 관련된다고 한다.

연구자는 “증오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나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볼 때나 피각-섬엽이 모두 활성화된다는 것은 뇌 과학자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면서 “두 부위 모두 공격적인 행동 시작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넘보는 경쟁자가 나타났을 때 공격적 행동을 취하게 되는 것에서도 증명 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증오하는 사람이나 모두 ‘고통스런’ 신호를 뇌에 전달시키기는 마찬가지란 설명이다. 보통 감정은 참고 시간이 지나면 약해지지만 증오감은 참을수록 더욱 커진다고 한다. 증오는 상대에 대한 공격적인 충동이 오랜 기간 쌓인 복잡한 감정으로, 주된 기능은 상대를 파괴하는 힘을 제공하게 된다고 한다.

“증오란 광기의 또 다른 이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대상이나 목적도 없는 증오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저 파괴만 일삼습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ELIE WIESEL, 1928-2016)이 생전에 보스턴 대학교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 ‘나의 기억을 보라’의 내용의 한 부분이다. 몸은 마음의 도구이다. 마음에 담겨 있는 감정은 그대로 몸을 통해 나타난다.

앞서 사랑과 증오가 동일한 감정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의 콩깍지가 있듯이 미움의 콩깍지도 존재한다. ‘준 것 없이 밉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밉다는 말로 눈에 미움에 콩깍지가 씌어서 까닭 없이 밉기 때문에 증오의 감정이 되어 미움에 대상에게 아무리 해를 끼쳐도 후회나 양심에 가책을 가지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최근 경남 창녕에서 의붓아버지와 친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9세의 여자아이가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들어가 탈출한 사건이 보도 되었다. 발견되었을 때 온몸에 멍이 들고 머리와 손 등에 상처를 입고 잠옷 차림에 어른용 슬리퍼를 신은 채 한 시민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여자아이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쇠사슬을 채웠고 집안일을 할 때만 풀어줬다고 한다. 계부는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을 지져 지문을 없애라고 했다고 한다.

천안 서북구 한 공동주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남자아이가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대학병원에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의붓어머니가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가 가방 안에 용변을 보자 더 작은 가방에 들어가게 했다. 아이는 결국 두 번째 가방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아이는 7시간이 넘게 가방에 갇혀있었다. 그런데 온라인상에 공개된 의붓어머니의 SNS에는 친자녀에 대해 애정을 표시하는 사진과 글이 다수 게재되어 있었다. 친 아들의 사진을 올린 뒤 ‘우리 아드님 40Kg 먹방 찍자’라는 글을 올리는가 하면 ‘사랑스러운 딸래미, 공주’라며 자녀의 성장을 자랑하기도 했다. 실제로 가방에 갇혀 숨진 아이의 몸무게는 23Kg에 불과했는데 같은 또래의 친 아들은 40Kg이었다.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공존되어 있어 각기 다른 콩깍지에 씌어서 각기 다른 행동을 만든 것이다. 즉 사랑과 증오는 손바닥 뒤집기처럼 단지 양면의 차이일 뿐이다.

극복할 수 없는 힘의 논리 앞에 저항할 수 없는 아이의 공포심과 두려움, 미움의 콩깍지로 인해 증오심에 싸여 아이에게 고통을 주어도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행동하며 오히려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에 경악하게 된다. 한참 부모의 사랑가운데 지내야 할 어린 아이가 7시간 동안 가방 안에서 느꼈을 공포,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손가락이 지져질 때의 두려움과 고통을 생각하면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그들에게도 같은 고통을 주어야 될 거라는 미움의 콩깍지가 필자의 눈에도 씌워지는 것 같다.

필자를 포함한 모든 자들에게는 사랑만이 아닌 미움의 콩깍지로 인해 이유 없이 증오하는 일로 상처를 주고 슬픔을 주는 일이 없도록 자신을 살펴보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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