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날에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주워 듣기도 하죠.

매년 중복날이 되면 부안 원모재에서는 이웃 동네분들을 모아서 복다림을 하고 있습니다. 복다림이란 복날에 토종닭이나 고기를 가마솥에 넣어 다린다는 말에서 나온 듯 합니다. 즉 복날 음식 재료를 다린다는 준말이 복다림으로 변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안에 있는 조그마한 원모재라는 재실에서는 조선시대 행해지던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날 손님맞이를 하기 위하여 재실을 대청소하고 복날이 되면 닭과 오리를 솥에 넣고 갖은 약재를 넣어 푸짐한 백숙을 만들어 냅니다. 백숙을 먹는 데는 햇김치와 깻잎김치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후식으로 수박과 참외를 준비한 후 편히 덕담을 나눌 수 있도록 합니다. 

요즘같은 바쁜 세상에 조그마한 재실에서 이웃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술과 고기를 대접하는 전통이 전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물질문명의 시대라 관습도 없어지는 판국인데, 이렇게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되니 신기할 뿐입니다. 

재실 중앙에 보니 낯익은 글자가 보여 자세히 보았더니 창암 이삼만의 글자인데 전체적으로 포치가 잘 되었고 더디에 가는 필획 속에 역시 대가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원모재(遠慕齋)라 쓰고는 손수 인장은 한쪽에 그렸습니다. 이 글씨는 약 4-50대 글씨로 보입니다. 한참 공부하는 흔적이 보이며 원숙의 단계로 가기 이전의 기초학습을 충실히 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창암이 정읍 부무실에 살면서 석담 암각서와 부무실편액을 남기는데, 이 때는 이삼만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시기입니다. 원래 창암의 이름은 이규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암이 이삼만으로 개명한 이후는 어느 정도 명필로써 이름이 날리던 시절입니다. 그러기에 고부이씨들이 창암에게 글씨를 가서 받았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창암이 글씨를 쓴 원모재는 효자 이승간과 이철동을 위해 제사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마을 어구에는 두 분을 기리는 효자각이 있는데 어찌 정감있고 잘 지었는지 보고 또 봤습니다. 마을 분들께 효자 이야기를 청하니 석호라는 호를 가진 이승간은 집에 불이나 어머니를 구하려 불속으로 들어갔는데, 불 속에서 나올 수가 없자 어머니를 보호하고자 꼭 감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아들이 마침 외출했다 돌아왔는데 이 광경을 보고 다시 불 속에 뛰어들어 아버지를 구하고 할머니를 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고 하네요. 참 이런 효행이 있었다니 후세에 전하고 또 전해야 할까 봐요. 

또 창암에 대하여 이승간의 후손인 이구일씨를 만나 물어보니 “우리 재각이 현재보다 밑에 있었는데 아마도 최초 만들어진 시기가 200년이 넘었는데 바로 그 때 써 주지 않았나 생각되며, 그 분은 뱀뱅이로 유명한 분입니다”고 말합니다. 또 “저도 어렸을 때 정월 뱀날이 되면 그때 이삼만(李三晩), 또는 백사(白巳), 흑사(黑巳), 황사(黃巳)를 써서 기둥에 거꾸로 붙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비록 어린 시절 글씨는 잘 쓰지 못했지만 그 정도는 손수했다고 자랑삼아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요즘같은 코로나가 판치는 세상에 마을의 미풍양속이 살아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정신이 이어가고, 나보다는 남을 위한 정신이 살아나야 어려운 국면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의 이 사태는 우리가 부른 것이지 그들이 결코 온 것이 아닙니다. 이럴 때 일수록 슬로정신으로 자기반성을 하면서 느리게 살았으면 합니다. 
 
/김진돈 전라북도 문화재위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