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린 월세때문에··· 크리스마스으 ㅣ참극

기초생활수급자 60대
월세 75만원 독촉에 격분
집관리인 방에 불 질러
재판부 징역 12년 선고

크리스마스인 지난해 12월 25일 밤 11시 55분께 구도심인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의 한 다가구 주택.

이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A씨(60)는 라이터를 이용해 천 조각에 불을 붙여 이 집 관리인 B씨(사망 당시 61세·여) 방 앞에 놓았다.

겨울에 얼지 않게 보일러 관을 감싼 헝겊을 불쏘시개로 삼은 것.

지은 지 수십년 세월이 지나 낡은 데다 문과 창틀 등이 나무로 만들어진 집에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불이 나자 B는 집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A씨가 문 앞에서 흉기를 든 채 “나오면 죽이겠다”며 문 앞을 막고 서 있었다.

B씨는 다급히 다른 지역에 사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남동생이 집주인이고, B씨는 동생 집에 살면서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아왔다.

남동생은 곧바로 112에 신고했지만, B씨는 방 안 화장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방과 화장실에 창문이 있었지만, 방범용 쇠창살이 설치된 데다 너무 좁아 탈출하기 어려웠다.

부검 결과 B씨 사망 원인은 ‘기도 폐쇄에 의한 질식사’였다.

A씨는 불길이 집 전체를 뒤덮은 것을 확인하고 현장을 유유히 벗어났다.

도주한 A씨는 범행 이튿날 오후 3시께 전주시 완산구 한 전통시장을 지나가다가 그를 알아본 동네 주민 2명에 의해 붙잡혔다.

주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A씨를 긴급체포했다.

불이 난 집은 10평(33㎡)도 안 되는 1층짜리 오래된 집이었다.

작은 방 3개와 부엌 등으로 이뤄졌고, A씨와 B씨를 비롯해 세 가구가 살았다.

나머지 한 세입자는 방화가 일어나기 며칠 전 지인을 만나기 위해 집을 비워 참변을 피했다.

크리스마스날 한 밤중에 이들 두 사람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는 2018년 5월부터 월세 25만원을 내며 이 집에서 살았다.

A씨와 B씨 모두 기초생활수급자로 매달 60만원 정도의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해 왔다.

A씨는 사건 당시 석 달 치 월세(75만원)를 밀렸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경찰에서 “나는 월세를 다 줬다고 생각했는데 B씨가 ‘밀린 월세를 내라’고 다시 독촉했다. (범행 당일) B씨가 외출했다가 집에 들어와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했는데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가 순간적으로 화가 나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방화 혐의는 인정하지만, 계획 범행은 아니다”는 취지다.

지난 27일 전주지법 형사12부(부장 김유랑)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A씨는 법정에서 “범행 당시 심신 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심신 미약은 마음이나 정신의 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를 말한다.

형법에서는 형 감경 사유가 된다.

A씨 변호인은 “피고인은 알코올 의존 증후군(알코올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으며, 정신 감정 결과 조현병 등 정신 질환 증세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고 충동적이 아니라 피해자를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CCTV가 없는 이면도로를 통해 도주한 점, 수사관과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점 등을 토대로 심신 미약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며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은 점,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윤홍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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