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와 산책을 하다가 생긴 일이다. 녹색 신호가 켜져서 아이는 자전거를 끌고 나와 아내는 걸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는데, 길을 다 건넜을 때쯤 난데없는 배달 오토바이가 아이 자전거의 후미를 치고 나가는 바람에 자전거와 함께 아이가 넘어졌다.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이어서 별일 아니니 운전 조심하시라 당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전을 하다보면 종종 배달 오토바이의 무리한 운행을 목격하곤 한다. 방어 운전을 하지 않으면 아찔한 사고로 이어질 뻔한 경험도 하게 된다. 무엇이 이러한 난폭 운전을 부추기고 있는 것일까.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배달 종사 인구는 250만명에 달한다. 온종일 주당 72시간을 일하지만 오토바이 유지비 등 자부담 탓으로 손에 쥐는 돈은 고작 한달에 100여만원. 이른바 플랫폼 노동자의 아픔이다. 대행업체 ‘콜’을 받고 배달하지만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고 법적 신분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되고 4대보험의 가입도 극히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우리 나라의 배달 문화는 더욱 확대되고 있고, 더욱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더 배달이 안 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이들의 서비스 노동은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는 배달 종사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얼마나 빨리 배달하느냐가 업체나 앱의 선호도를 좌우하다보니 교통신호도 무시할 수밖에 없고, 위험천만한 곡예운전을 할 수 밖에 없는 건 아닐까. 무더운 여름날 택배 아저씨에게 시원한 얼음물 한 잔을 대접하던 미덕은 코로나 19 위기로 사라진 지 오래다. 택배는 문 앞에 놓고 간다는 메시지와 함께 조용히 집으로 온다. 이들의 서비스 노동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존중감이나 만족도는 얼마나 될까. 
 
한 서비스 업체의 고객 설문서 내용에는 ‘직원이 미소지었나요?’라는 항목이 있다고 한다. 과거 ‘손님은 왕이다’라는 전제를 기업의 가치로 삼던 대부분의 서비스 업체에서는 이렇게 ‘억지 친절’을 강요하는 설문을 상시 비치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그렇지 않을까. 
2018년 3월에 감정노동법이 국회를 통과하였지만 현실은 고통의 연속이다. 콜센터 직원과 마트 점원, 텔레마케터의 공통점은 고객에게 항상 친절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라는 점이다. 근자에는 코로나 19가 콜센터 노동자, 텔레마케터 등에게 집단 감염되는 바람에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앨리 러셀혹쉴드는 임금 노동의 구성요소를 육체노동+정신노동+감정노동으로 분류하면서 감정노동에 대해 ‘관리된 마음(The Managed Heart : Commercialization of human feeling)’이란 표현을 썼다. 또한 감정노동을 세 가지로 분류하기도 하였는데, 긍정정 감정노동으로는 항공, 금융, 유통, 병원 등이 있고, 중립적 감정노동으로 카지도, 장례 등을, 부정적 감정노동으로 경찰, 조사관 등을 들고 있다. 사실 급여 생활을 하는 노동자로서 감정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 분야가 얼마나 될까. 
 
2016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은행 직원들에게 미소를 강요하는 등 소란을 피운 30대 고객에게 5일간의 구류를 판결한 적이 있다. 재판부는 “세상 그 누구도 상대방에게 웃으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비스직 종사자는 무조건 고객에게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감정노동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이 20108. 10. 18. 시행되었다. 감정노동이나 서비스노동이나 법이 있으면 사업주든 사용자든 반드시 지켜야 하고, 법이 없으면 제정해야 한다. 노동을 제공하고자 근로계약을 한 것이지 감정까지 제공한다고 계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서비스노동자와 감정노동자에 대한 인식과 그들의 노동에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은 반드시 필요하다. 21세기를 사는 성숙한 시민에겐 두말하면 잔소리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