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리 '현대미술, 개판오분전'
토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극복

개판 오분 전이란 말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에게 식사를 배급할 때 미리 ‘개(開)판’을 예고했다고 한다.

즉 개판 오분 전이란 ‘밥 배급 5분 전’이란 뜻을 가졌지만 현재는 어수선한 상황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마 밥을 배급할 때 사람들이 모여 그야말로 개판이 돼 당초 어원이 변했다는 설도 있다.

문리 작가의 책 ‘현대미술, 개판 오분 전’이 출간됐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책은 전북 현대미술이 열리기 5분 전, 뜨거운 미술판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작가로서 새롭게 걸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현대미술에 대한 통찰력이 녹아있는 책이다.

현대미술은 순수형식 실험과 결별한 지 오래이기에 역사, 정치, 사회, 문화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글쓰기를 감행했다.

창작자, 기획자, 평론가로서 주체적 시각으로 아시아 현대미술 현장의 내밀한 담론을 풀어내고 있으며, 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화해성(和諧性)’을 제안하고 있다.

1장 ‘새벽이 온다’는 탄핵정국, 오송회 사건 등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부조리하게 시대 풍파를 감당해야 했던 이야기 속에 미술을 녹여낸 글들을 모았다.

2장 ‘속 뜨거운 미술판 이야기’는 전시를 기획하고 관객을 맞으면서 생긴 이야기와 현장 미술가들의 내밀한 생각과 고민을 담았다.

직업이란 배울 수 있지만 예술가로 사는 것은 생활방식이다.

그들은 창작의 희열과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살아감을 제시한다.

3장 ‘변방의 파토스’는 전북도립미술관 ‘아시아 지도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고한 글들을 모았다.

미술관은 주체적 시각으로 아시아현대미술을 바라보면서 기획전시와 창작스튜디오 인적교류를 통해 전북과 아시아 간 연대를 강화하고 잇다.

4장 ‘동시대 한국화 화해성 연구’는 서구문화의 역사적 기초와 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서양의 문화예술이론들을 부문적으로 접하면서 그와의 관계성을 찾으려 했던 필자의 노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특정한 지표 없이 흩어져 있는 동시대 한국미술의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화해성’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미술가는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취는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휴정의 선시처럼 스스로 성찰하면서 미지를 묵묵히 걸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존재이다”며 “미술가로 산다는 것,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듯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다. 재능을 의심하고, 작품이 맘에 차지 않아 고민하고, 뭔가를 새롭게 발견해 가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치 있는 삶이기에 내일도 작업실 문을 열 것이다” 고 밝혔다.

저자는 정읍 출신으로 판검사가 될 것을 기대하며 자갈논을 갈아 전주에 유학을 보낸 부모의 의지와 반대로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현재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베이징 쑹좡현대미술문헌관 학술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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