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골 유적지··· 선조들의 구국 애국심을 배우다
조용한 시골 유적지··· 선조들의 구국 애국심을 배우다
  • 전북중앙
  • 승인 2020.09.1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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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부안 의병 창의때 백마피 마시며 국가-민족 위해 목숨 맹세한 곳
1963년 봉문 속 의병장 유물 출토 홍성창의 비각 임진창의 92의사 명부
모충사 순국 의별 넋 위로하는 사당 의병장 채홍국-고덕붕 등 121위 모셔져

# 조용한 시골의 한적한 여행지, 고창

전라북도 고창은 고장의 브랜드로 ‘한반도 첫수도 고창’으로 정한 뒤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고창군은 고인돌뿐만 아니라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신발과 중국청자 등 지역 곳곳에 다양하고 오랜 유적과 유물이 산재하고있죠. 

이것은 당시의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경제적 풍요를 누렸다는 증표로 보고 3000년 전부터 문명사적 한반도의 첫수도였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만큼 고창은 우수한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고창에 다녀오면서 들렀던 흥덕면 용반리 남당마을에 있는 남당회맹단과 모충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조용한 시골의 한적한 여행지로 가을에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조용한 주변의 분위기도 좋았고 끝없이 높아진 파란 하늘을 원 없이 보면서 코로나 19로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함도 느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유적지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정신에서 구국이란 무엇일까 하는 마음도 배워 올 수 있을 것입니다.
 

# 의병들의 이야기가 깃든 <남당회맹단>

내비게이션의 도움으로 도착한 남당회맹단의 첫 모습은 파란 하늘 밑에 우뚝 솟은 무덤 형태의 단이 눈에 가득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단 위에 파랗게 자란 잔디들이 바람에 쓸려 물결을 이루는데 장엄하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봉문 형태가 바로 남당회맹단으로 혈맹단이라고도 하며,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채홍국 등 전라북도 고창. 부안 지역 300여 명의 선비와 양민들이 구구의 기치로 의병을 창의하면서 무덤 형태의 단을 쌓은 뒤 백마의 피를 마시며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한 곳입니다.

다섯가지  맹약을 내걸었는데 ‘터럭과 신체는 모두 이것이 부모가 주신 것이며, 지금 우리 임금님은 바로 부모이니, 부모의 위급에 당하여, 그 사람의 자식 된 자가 부모의 위급에 달려갈 때, 어찌 부모의 터럭과 신체를 아까워할 것인가, 여기에 삼강오륜이 있으니 이것을 알고 행할 것이다’ 등 모두 구구에 관한 맹서였다고 합니다. 

고창의 의병들은 혈맹단 앞에서 훈련도 하고 군량을 모집하여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도 다시 의병이 모였고 모두 순국하였다고 해요. 

이 봉문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했는데요. 

1963년 신상우 군수가 “임진창의남당회맹단기적비‘를 단상에 세울 때 좌대 작업 중 이 척 하(약 88cm)의 장검 다섯 자루, 투구 끈, 청색 구슬 반 되가량, 45되들이 반흑색주기 토기, 화살촉 1되가량이 채홍국의병장의 유물로 추정되는 물품이 출토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유물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1964년에 의병장 채홍국의 12대손 채병묵 등 고창 군민들이 뜻을 모아 현재의 기적비를 새로 세웠습니다.

혈맹단 또는 술무덤이라고도 하는 남당회맹단은 2004년 6월 8일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 흥성창의비각

남당회맹단의 오른쪽의 비각은 ’흥성창의비각‘입니다. 임진창의92의사 명부가 창의비각 내 현수되어 있습니다. 

의병장 채홍국, 고덕붕, 조익령, 김영년 등 남당회맹단에 참여한 충의대절을 가리키는 임진창의92의사는 고종 9년 의병장 채홍국이 병조판서로 추증되면서 함께 향사된 선비 등을 지칭합니다. 남당회맹단에 참여했던 채홍국 의병은 300~500여 명으로 양반을 제외한 평민과 노비 등은 가동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조의 정치 사회체제를 고려할 때 평민과 천민 노비 등을 제외하고 양반계층의 명부만 적힌 것은 당연하지만, <임진창의92의사>는 92명의 양반만이 아니라 <남당회맹단 채홍국의병 전체>를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 임진창의92의사를 모신 사우, <모충사>

비각 바로 옆에 위치한 사당은 모충사로 채홍국, 고덕붕, 김영년, 채명달, 채경달 등 임진창의92의사를 모신 사우(祠宇)입니다. 순국한 의병들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인 것이죠.

남당회맹단 앞에서 모충사로 들어가는 협문에 들어서면 성인당과 모충사 묘정비를 볼 수 있습니다. 전북지사 공적비, 고창군수 기적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성인당 위의 내삼문을 지나면 모충사가 있습니다. 1924년 흥덕마을 선비들이 뜻을 모아 모충사를 건립했습니다. 의병장 채홍국을 고창군 흥덕면 하남리 행정에 단향으로 모시다가 1985년 현재 회맹단옆으로 대규모 사우를 건립하여 배향하였습니다. 

맞배지붕 및 겹처마 정면 3칸 건물로 의병장 채홍국과 고덕붕맹주장을 주벽으로 조익령, 김영년, 한계상, 채명달, 채경달, 채영달을 좌우로 배향하고 동의사 121위가 동서벽으로 종향되어 있습니다. 행사일(음력 9월 25일)에만 문을 열기에 창살 틈으로 살짝 안을 엿보았습니다. 

채홍국의병장의 영정이 놓여있었습니다. 정유재란 때 부안 호벌치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여 누차 승리를 거두었으나 적들이 너무 많아 이른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전투를 벌였으나 적병의 칼날에 가슴을 찔려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아들 채경달과 채명달까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약 1주일간에 걸친 호벌치 전투에서 남당회맹단 의병 대부분이 전사하는 일대 혈전이었답니다. 호벌치 전투는 향촌선비들과 농민. 천민. 승려계층까지 하나로 결합해 최후까지 침략군인 왜적과 대항하여 싸운 의병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합니다. 이분들의 선위도 모충사에 모셔져 있다고 해요. 

 

# 의로움을 취하다 <취의문>

모충사 외삼문이 정문인데 ”취의문“이라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의로움을 취하는 문이라는 뜻입니다. 

취의문 벽에는 고창. 부안의 충의대절 임진창의92의사에 대한 설명과 남당회맹단, 모충사, 호벌치 전투 등의 설명이 적혀 있어 읽어 보고 사당을 둘러본다면 선조들의 구국 애국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창의 남당회맹단은 전국 유일의 충혈이 깃든 곳입니다. 구국의 기치를 높이 세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을 모신 사당 모충사를 방문하여 선조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아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고창 남당회맹단과 모충사>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용반리 460

/전북도 블로그기자단 '전북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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