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교통요지 생산물 풍부
7개 핵심동 70년만에 복원
1300년간 관청터 유물 다수
전주시 미래 핵심공간 구상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주의 자존심을 지킨 전라감영이 복원됐다.

비록 조선시대 때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전라감사가 업무를 본 선화당 등 핵심 건물들을 갖추고 옛 위용을 드러냈다.

전라감영 복원을 계기로 이런 전주의 위상을 회복하고 새로운 전주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전라감영이 전주에 설치된 이유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이다.

전라감영이 나주가 아닌 전주에 설치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종실록에는 ‘평안도 평양감영, 전라도 전주감영, 강원도 원주감영, 황해도 해주감영 등이 모두 서울에서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전주가 나주보다 한양에서 가까웠던 게 그 이유라는 것이다.

전주가 교통의 요지이자 생산물이 풍부했다는 것도 이유였다.

‘감영을 설립할 곳으로 나주는 하도(下道)에 치우쳐 있어 온편치 못하고 전주는 상도(上道)에 치우쳐 있으나 영남과의 접경이 멀지 않으며 호서와도 가깝고 물력(物力)도 나은 듯하다’는 선조실록 기록이 있다.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라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또한 함경감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감영들이 임진왜란 등의 이유로 터를 이리저리 옮긴 것과 달리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 내내 전주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주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70년만에 복원된 전라감영

전라감영 복원 논의는 전북도청사 이전 계획이 확정된 1996년 시작됐다.

전라감영은 도청사가 철거된 뒤 2017년부터 104억원이 투입돼 한국전쟁 중 폭발사고로 사라진 지 약 70년 만에, 복원 논의가 시작된 지 20여년 만에 복원됐다.

새로 태어난 전라감영에는 웅장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의 팔작지붕이 돋보이는 선화당과 내아, 내아행랑, 관풍각, 연신당, 내삼문, 외행랑 등 7동의 핵심건물이 들어섰다.



▲전주의 자긍심

전라감영 복원은 단순히 선화당 등 핵심건물 복원의 의미를 넘어선다.

전주문화유산연구원은 2016년 전라감영 발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옛 전북도청사 부지가 단지 조선시대의 전라감영 부지일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 때부터 1300여 년간 관청 자리였음을 보여주는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고 밝혔다.

전라감영 터가 적어도 1300년 동안 주변을 통치했던 중요한 곳이었다는 주장이다.

전주와 전북에서는 전라감영 복원을 계기로 가야와 백제, 후백제, 동학농민혁명 등 찬란한 역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주시는 전라감영을 전주의 미래가 담긴 핵심공간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전라감영 진상품을 손수 만드는 체험 교육과 전통음악 공연도 하고, 전주대사습놀이 무대도 만들기로 했다.

특히 한옥마을과 풍패지관(객사) 등을 연결하는 관광벨트 구축을 통한 구도심 활성화에도 공을 들일 계획이다.

/김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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