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理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의 정당하고 당연한 조리’라고 나온다. 아주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에 이치를 모르고 막무가내식으로 말과 행동을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흔하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치에 반하는 집단은 바로 정치집단이다. 당연하게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정치인들이 이치와는 전혀 다른 당리당략과 자신의 안위를 내세워 소위 국민을 농락했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물의 정당하고 당연한 조리는 곧 정직과 신뢰를 수반한다. 다시 말하면 거짓이 없고 속임수를 쓰지 않은 행위를 말함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대부분 공개된 것이 현실이다. 아주 특별한 사항인 국가기밀 등을 제외하면 만천하에 공개되어 일반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실이 많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 옆에 가서 훈수를 두면 양쪽 사람들이 행하는 포석들이 다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오직 당사자들은 전체의 흐름을 보지 못하여 실수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전체의 흐름보다는 단편적인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이나 자신만을 위한 것에 치우치다 보니 이치를 몰라 갈등과 분쟁이 끊이질 않는 것 같다.

이치는 단순한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면서 판단하는 것인데 이를 왜곡해서 다르게 해석하거나 상징성에 치우치다 보면 이치가 아닌 엉터리가 되고 만다.

옛말에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와 같은 옛말도 결국은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간접적인 표현이다. 하늘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순천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이치에 순응하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역천자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자신만의 오만방자한 삶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마치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하늘을 거슬러 이치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현대의 인류가 가진 모든 생활 속에 이처럼 이치를 모르고 막무가내식으로 행동하는 부류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이치를 모르는 행위의 극단이 오늘 미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가 아직도 종식되지 않고 백신에 대한 기대를 생각하며 방역 당국은 필사적으로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새다. 아직도 세 자릿수의 확진자가 매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치에 반하는 행위를 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합집산과 그들의 예전과 지금 그리고 미래를 생각해 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지금도 당리당략에 의해 이치를 애써 외면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물론 말로는 국민을 위한다고 큰소리치지만 종국에 가서는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일이 최고다.

어쩌면 정치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원칙이 있으니 이치를 가장하여 자신들의 안위와 보전만을 위한 것은 똑같게 보인다. 

물론 모든 정치집단이나 정치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대략적인 대부분이 그런 것이고 결국은 이해집단이 충동하여 갈등과 분쟁이 있게 되는데 우스운 것은 그러한 갈등과 분쟁의 단초에 대해서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이치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제 진정으로 이치를 알았으면 한다. 정치집단이나 정치인들에게 치우쳤지만, 이치는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이다. 결국 이치를 알면 갈등이 해결된다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이다.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의 현장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치를 깨닫고 순리에 적응하면 결국 순천자는 흥하리라는 명제가 우리 스스로 닥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 본다. 이치를 알면 갈등이 해결된다.
   
/이경로 반태산장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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