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 (Jane Austen, 1775 ~ 1817)이 쓴 소설 오만과 편견은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최근에는 연극으로도 공연되고 있다.

책 제목에서 이야기하듯 오만과 편견은 우리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때가 더 많아서 제대로 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하도록 하기도 한다.

오만함으로 인해 편견을 가지기도 하고 편견을 가지는 것으로 인해 오만해지기도 한다.

작가는 이에 대한 적절한 스토리를 통해 인간이 가지는 편견의 감정과 오만에 대해 시사해 주고 있다.

소설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 영국의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한 사람이 가지는 사회적 욕망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한 가정의 가정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욕망이 그려져 있다.

당시 여자는 상속권이 없다는 것과 직업을 갖지 못한다는 전통적 환경은 그 시대에 여성의 성공이란 돈 많고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자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서 자존심 때문에 혹은 오해로 인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어긋나는 사랑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인과 빙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도 오만과 편견으로 인해서 서로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며 힘들어하다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재치 있고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인 엘리자베스는 집안 좋고 능력 있고 외모도 출중한 남편을 맞이하게 된다.

영국의 전통적 문화를 배경으로 그 시대에 살던 여성들의 특성상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결혼이라는 제도였다.

태어난 신분에 따른 사회적 활동의 우월성을 통해 이 시대에 흔히 말하는 금수저와 흑수저의 사회적 특권이 이루어진다.

처음 무도회장에서 만나게 된 엄청난 재산과 높은 신분을 가진 다아시는 겉으로 보면 오만함의 대표적 인물이다.

엘리자베스는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난 다아시의 차가운 듯한 태도에 오만하다는 편견을 갖게 된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점차 다아시의 내면의 따뜻함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된 편견으로 다아시에 대한 오만함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았을 때 이를 시인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자신의 잘못된 편협한 사고가 만든 오류를 깨달게 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통해 사람이 가지는 편협된 편견이라는 아집이 진실을 왜곡시키고 잘못된 판단을 만들어 그릇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는 부정적 편견이 그 편견에 대상에 대해 얼마나 오만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러한 편견의 대상은 단지 사람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각 개인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치우치는 편협된 편견을 가지게 될 때 오만한 성격을 가지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지나치게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용에 무게를 두게 되어 원만한 협력을 이루게 된다.

지금의 정치인들을 보면서 자기편견에 따른 오만함을 보게 된다.

너무 지나친 자기편견에 따른 편협됨으로 자신들이 행하는 오만함에 조금도 잘못됨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이러한 행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자신이 야당 시절에 비난했던 것들을 이제는 가장 올바른 것으로 여기고 행동하고 야당 또한 여당 시절에 했던 잘못된 일들을 이젠 비난한다.

국민들이 볼 때는 한심한 행동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적절한 실제적 일들은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지만 몇 가지 나열해 본다.

민주당의 당헌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

’고 돼 있는데 여기에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

’는 단서 조항을 추가하여 권리당원들을 상대로 진행된 온라인 투표에서 찬성율 86.

6%가 나와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많은 당원들께서 당헌 개정에 뜻을 모아주셨다.”라며 "이후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이 거친 당원 투표 결과가 당헌·당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민주당 당규에 의하면 ‘전 당원 투표는 전 당원 투표권자 3분의 1 이상의 투표’로 명시돼 있다.

즉 유효투표율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번에 실시한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니라 당원들의 의지를 묻는 것”이라며 조항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옹색한 해명을 했다.

만약 다른 당에서 이런 일을 했다면 엄청난 비난을 했을 일인인데 자기편견에 따른 오만은 그릇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런 땜질식 법 개정 방식으로 인해 부동산 법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고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보편적으로 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을 법대로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그릇된 오만함 때문이다.

완벽한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법은 모든 사람 안에 양심의 법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양심이 바르지 못한 까닭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일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임명 땐 민주당은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로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을 완수해 검찰이 국민신뢰를 회복할 인물’로 보았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등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은 ‘이 정권에 불만 있으면 옷 벗고 나가라는 선언’이라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바른미래당도 ‘코드검찰’을 운운하였다.

지금에 와서는 완전히 반대로 되었다.

이젠 민주당에서는 눈에 가시처럼 여기는 존재이다.

마치 검찰총장 한 사람을 끌어내리기 위해 여당과 법무장관이 혈안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편협된 인식을 통한 자기편견에 따른 오만은 이기적인 자기중심적 아집에 불과하다.

모든 정치인들은 정치꾼이 되지 말고 국민에 대해 립서비스가 아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편협되지 않은 정치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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