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와 사람 - 천희심 명창 / 도립국악원

창극단 첫 정년 퇴임자
목포전국대회서 대통령상
19일 은퇴기념 마지막 무대
전국팔도 흥보가공연 계획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천희심 명창이 20년 가깝게 정들었던 국악원을 떠나게 된다.

국악원 창극단이 창단 이후 첫 정년퇴임자가 배출되는 것이다.

정년 퇴직일이 다가옴에 따라 홀가분하다면서도 아쉬운 마음도 숨기지 않았다.

“재임 시절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창극에 참여하면서 보람도 많았다. 제자들과 퇴임 기념 공연 흥보가 연창회를 마련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취소를 했다. 우선 푹 쉬고 싶다.”

전남 목포 출신으로 바이올린을 키는 외할아버지와 소리를 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예술적 끼를 품은 채 자랐다.

아버지는 국립창극단과 광주시립에서 활동했던 고수 천대용(광주시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고법) 명인이다.

14살 되던 해 아버지의 권유로 가야금 병창을 시작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20살 때 소리에 입문했다.

하지만 본격 소리를 시작한 것은 남편 권혁대 명고를 만나면서부터다.

부인의 타고난 끼를 한눈에 알아 챈 권혁대 명고는 아예 전주로 터를 옮기고 김소영 명창, 이난초 명창 등에게 동초제 심청가, 동편제 흥보가, 춘향가 등을 익혔다.

서른 언저리에는 동초제 대모인 이일주 명창에게 심청가를 배웠다.

이후 2004년 42살의 늦은 나이로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에 입단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7년 전주대사습대회에 첫 출전해 3등을 차지했고, 2000년 목포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명창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같은 대회 4번 출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시련도 있었다.

10년 전 갑상선 수술로 소리꾼으로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수술이 끝나자마자 소리가 나는지 목을 체크할 정도로 소리꾼의 근성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갑상선 수술 이후 목이 달라졌음을 알게 됐고, 이후 별의별 방법을 사용했으니 회복되지 않아 소리꾼의 길을 포기할 뻔도 했다.

소리인생 40년, 전주에서 본격 시작한 것만 얼추 계산해도 20년이 넘었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소리로 성공하라는 남편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피곤해지고 매사가 귀찮아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되잡고 자신을 담금질 하며 걸어왔다.

이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

소리꾼으로 가야 할 길은 변함이 없지만 환경이 변하게 된 것이다.

19일 국악원 목요국악예술무대에서 자신의 은퇴를 기념하는 공연을 마지막으로 정든 국악원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소리꾼 천희심의 이름을 더욱 각인시킬 각오다.

욕심일 수 있으나 한번도 해보지 못한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전국 팔도를 다니며 흥보가를 선보일 예정이다.

팔도유람 공연은 전국 최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할 예정이다. 예전부터 마음속에 담아왔던 계획으로 어느 정도 주변정리가 되면 시작할 계획이다. 항상 의무감과 책무감에 평생을 살아왔다. 그 의무감을 풀어낼 각오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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