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좋아했던 평범한 시골소녀
간호학원 추락사고로 장애얻어
마음 다잡고 좋아했던 운동시작
2014년 아시안게임 참가하고싶어
42살 나이로 사이클 종목 선택
시작 첫해 단번에 국가대표 선정
장애인사이클도로월드컵 금메달
아시안게임 금메달 2개획득 쾌거
평창패럴림픽 7개 종목 참가 완주
"남에게 도움 되는 사람 될 것"

정읍 고부 농사꾼을 부모로 둔 평범한 소녀였다.

평소 건강하고 쾌활한 성격에 체격이 남다르게 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열리는 모든 체육대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여했을 정도다.

군인이 되고 싶었다.

모든 것에 적극적이고 몸을 쓰는 것이라면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골에서 군대에 관련된 정보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체력은 충분한데 공부가 조금 뒤쳐졌다.

차선책으로 간호사를 선택했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익산에 있는 간호학원을 노크했다.

간호학원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며 마음 한쪽에는 군인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소녀는 뜻하지 않은 한 순간의 일로 인해 인생이 변하게 된다.

간호학원을 다닌 지 2주째 되는 날 우연치 않게 건물에서 추락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당시 나이 20세, 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일 나이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고가 난 것이다.

사고가 발생할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다.

병원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오게 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믿기 힘든 현실을 감내해야 했다.

사고로 인한 보험혜택도 없어 그 많은 돈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생활이 힘들고, 살기는 더 힘들었다.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 우울증을 비롯해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집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가출도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물으며 밤을 지새기도 했다. 어느 순간 고통을 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살하는 사람이 그때는 이해가 됐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없는 것보다 필요한 존재가 되자고 생각했다.

이 순간만 버티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자신과 싸워 이긴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엔 파지나 고물을 주워 살아갈까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운동이 떠올랐다.

장애인이 됐어도 운동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처음엔 집 근처에서 탁구나 배드민턴을 하면서 외부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2014년도 아시안게임이 대한민국에서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불현 듯 대회에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좀 더 큰 세상으로 나가 새로움을 겪어보고 싶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이클을 선택했다.

지도자에게 직접 전화를 했고, 타고난 체력 덕분에 좋은 기록이 나왔다.

이 때 나이가 42살인 2013년 7월경이었다.

거의 죽을 만큼 연습에 임했다.

오르막길을 만나면 숨이 막혀 눈앞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하지만 ‘네가 더 소중하니 중간에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라’는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손이 발발 떨리고 숨 한 조각 목에 넘기기 힘든 상황이 돼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힘차게 페달을 굴렸다.

여기서 포기하면 집에서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 볼 면목도 없어지게 된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해 준 것 없지만 포기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유일한 것이라 여겼다.

달리다 숨차면 멈췄다.

숨을 어느 정도 고르면 또 다시 달렸다.

어차피 시작한 것, 제대로 하자 생각했다.

빨리 달리면 고통도 빨리 끝난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짧게는 10km 길게는 70km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멈추지 않고 달렸다.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그 덕분일까.

사이클을 시작한 지 첫 해인 11월에 단 한 번의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봄부터 서너 차례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에 최종 선정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하면 이례적인 기록이다.

그만큼 기록이 좋다는 이야기다.

이듬해인 2014년 4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사이클월드컵대회에 첫 출전했다.

입상만 하자고 출전했는데 월등한 실력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됐다.

대회 첫 날인 독주에서 타 선수들을 큰 차이로 제치고 1위로 골인한 것이다.

초보자가 금메달을 따니 주위에서 모두 놀라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큰 성취감을 얻게 됐고, 앞으로 살아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 의미가 있었다.

세계선수권대회 뿐 아니라 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따자 이도연이란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접하기 전에 스스로 생각했던 하위 인생에서 이제는 어엿하게 상위 인생으로 역전하는 계기가 됐다.

2016년에는 브라질 리우패럴림픽에 출전했다.

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을 처음 접하는 바람에 힘은 좋았지만 기술이 부족했다.

7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기술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2018년도에는 한국 평창에서 동계패럴림픽이 진행됐다.

이 대회를 놓칠 수 없었다.

리우패럴림픽이 끝나자마자 동계 종목 크로스컨트리에 도전했다.

자전거와 달리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달려야 하는 종목이지만 도전정신이 가득찬 자신을 말릴 수 없었다.

동계종목 7개 종목에 참가했다.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

자신과의 싸움을 위해 참가했기 때문에 메달 획득은 두 번째 문제였다.

등수와 상관없이 완주했으며, 이후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을 모두 출전한 선수로 각인됐다.

이제는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상대를 이겨보고 싶다.

동계와 하계 패럴림픽을 참가했으니 이제는 부족한 점을 보완해 동경올림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현재 전북 순창에서 전지훈련에 한창이다.

장애인국가대표 훈련장은 경기도 이천에 있지만 그곳은 역도 등 실내종목 위주로 운영된다.

순창은 자동차도 드물고 공기가 좋은 뿐더러 오르막과 내리막 코스가 많아 훈련장소로 제격이다.

해마다 이곳에서 훈련을 하고 있으며, 곧 장소를 옮겨 다른 팀과 훈련을 이어갈 예정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경험을 토대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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