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우직하고 정직하게 살고 싶어요. 각자 본분을 다하면 코로나19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띠의 해를 앞두고 한 평생을 소와 함께 해온 완주군 화산면 축산농가 김중배 씨(65)의 소박한 새해 꿈이다.

화산에서 태어난 그는 군 생활 3년과 직장 생활 1년 등 외지에서 4년을 보낸 후 개인 사정으로 스물여섯의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귀향 직후 아내와 함께 낙후된 농촌의 생활 향상과 기술 개량을 도모하고 청소년을 육성하는 ‘4H 운동’에 뛰어 들어 8년 동안 고향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축산업은 지난 89년 정부가 실시한 농어민 후계자로 선정되며 운명처럼 시작하게 됐다.

당시 마리당 50만~60만원 하던 송아지 7마리를 400여만 원에 사들여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초보 축산농에게 녹록하지 않았다.

돈을 좀 벌겠다 싶으면 소 값이 뚝 떨어지는 파동이 발생하거나 전국적 구제역 확산 등 악재가 돌출해 낙담을 거듭하게 됐다.

“소 값 파동이 일어 200만 원 하던 암송아지 한 마리가 20만 원까지 곤두박질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말로 다할 수 없지요. 당시에 25kg짜리 한 포대 당 4천 원 정도 하던 사료 값까지 치솟아 이중고를 겪어야 했지요. 마음고생 심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던 김 씨의 얼굴에서 갑자기 미소가 사라졌다.

고통과 난관 속에서도 30여 년 동안 축산업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은 고향에서 좌절하고 무릎을 꿇으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면의 인구는 약 2천700여 명(올 9월말 현재)에 불과하지만, 소 사육농가는 330여 가구에 사육두수는 1만6천600여 마리에 육박한다.

이런 사육규모는 전북지역 면 단위 중 화산면이 최고일 정도로 ‘소의 고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젊은 날의 패기와 열정을 쏟았던 ‘고향에서 반드시 일어서리라’라는 생각으로 쉬지 않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야 말로 소처럼 우직하게 열심히 일했다”며 “농가에 대한 지원도 위로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지역 축산농가들은 소 인공수정에 필요한 지원부터 조사료 작업비(옥수수), 축사 CCTV와 환풍기 설치는 물론 스키로더와 사료배합기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기계도 지원받을 수 있어 고비 때마다 위안이 됐다.

2021년이면 축산농에 뛰어든 지 33년이 되는 그는 현재 18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베테랑 축산농민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벽마다, 혹은 주말마다 축사에 나가 소를 돌보는 아들 종현 씨(30)가 있어 더욱 든든하다.

김 씨는 “축산업은 힘이 들지만 소처럼 우직하게 일하면 보람도 두 배”라며 “아들이 축산업을 잇겠다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적극 추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소띠 해를 앞두고 소의 의미를 묻자 “내 인생”이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가족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게 바로 소입니다. 소를 키우며 우직함과 정직함을 배웠고, 아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말하지요. 우직하게 각자 본분을 다하면 코로나19도 조기에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하하!” 

아들과 함께 갓 태어난 송아지를 돌보던 그의 얼굴에서 보석과 같이 빛나는 웃음꽃이 피었다.

/완주=박태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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