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농악은 지난 1987년 12월 전북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받은 호남우도농악의 상징적인 대표 농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부안농악의 중심에는 설장고 명인 故 고은 이동원 선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동원 선생은 지난 1922년 태어나 15세부터 고창에서 거문고 명인 신쾌동 선생에게 장고가락과 농악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정읍에서 장고의 1인자 김홍집 선생으로부터 장고가락을 배웠다.
 
이어 1956년 부안의 김경천·박남식 등과 부안여성농악단을 창단해 전국을 무대로 순회공연을 펼치는 등 부안농악을 전국에 알리는데 앞장섰다.
 
특히 이동원 선생은 지난 1961년 서울 덕수궁에서 열린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전북도 대표 농악단을 이끌고 설장고로 출전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전북도 대표 농악단의 첫 대통령상으로 호남우도농악의 중심인 부안농악을 전국적 반열에 올려놓은 계기가 됐다.
 
이후 전라예술제 대통령상, 전주대사습놀이 차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1982년에는 전북농악경연대회에서 부안상서농악을 지도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자 양성에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전남 여수 임재식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국가무형문화재 제11-3호 이리농악 김형순 보유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6호 정인삼 예능보유자 등 다수의 명인을 배출하기도 했다.
 
진정으로 농악을 사랑한 이동원 선생은 1990년 69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이동원 선생에 의해 전국적 반열에 오른 부안농악은 언제 유례 됐을까?
 
‘1737년 영조 때 암행어사 원경하는 전라도 부안에서 두레 풍장굿을 치는 것을 보고 제2의 정여립인 대동굿이 될까 싶어 농악기를 압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부안농악의 유례가 매우 오래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라도(호남) 농악에는 좌도와 우도농악이 있는데 우도농악은 전라도 서부지역의 농악을 일컬으며 익산, 김제, 부안, 고창, 정읍 등 옛날부터 살기 좋은 곡장지대였으므로 농사소리와 풍물굿과 같은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우도농악의 기법은 주로 느린 가락이 많으나 빠른 가락도 곁들여 있어 비교적 가락이 다채롭고 개인기에 치중한다. 
 
특색으로는 윗노름에 치중하지 않고 밑노리(발놀음) 가락이 다채롭고 멋져 여자로 비유된다.
 
부안농악은 이러한 호남우도농악의 중심으로 이동원 선생은 이러한 우도농악의 특색인 밑노리에 능통한 설장고 명인이었다.

/부안=양병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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