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MeToo movement)은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Too)를 다는 것으로 대중화되었다.

직장 및 사업체 내의 성폭행 및 성희롱을 SNS를 통해 입증하며 보편화되었다.

(위키백과) 우리나라에도 몇 년 전에 급격하게 운동이 전개되어 유명인들의 그릇된 행위들이 드러나면서 대중 앞에서 사라지고 자숙하는 일들이 있었다.

최근에 다시 이 운동이 확산하고 있어 이슈가 되고 있다.

필자의 어린 시절은 지금처럼 아이들의 놀이도구가 발달되지 않았던 탓에 곤충들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도구가 되었다.

방아깨비, 물방개, 청개구리 등은 아이들의 손에서 놀이도구가 되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물방개의 머리를 반대로 비틀어 거꾸로 놓으면 부지런히 날개를 치며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방아깨비의 두 개의 긴 뒷다리를 손으로 붙잡고 있으면 마치 방아를 찧는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은 곤충을 놀이도구로 삼아 즐거워했지만, 곤충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었다.

곤충의 움직임이 아이들에게 재미와 즐거움이 되었으나 곤충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몸부림이었다.

여기에는 힘의 논리에 의한 갑과 을처럼 아이들은 갑이 되고 곤충은 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철없는 아이는 자신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질을 한 것이다.

필자는 만 36개월의 군 복무를 하였다.

당시 군대에 통용되었던 “고참은 하나님과 동급이다”라는 말이 있었듯이 고참병은 신참병에게 가히 하늘과 같은 존재가 되어 행동하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이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구타와 얼차려를 받는 경우가 많았고 필자 역시 엉덩이가 터져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을 만큼 맞아 본 경험이 있다.

고참병은 갑의 위치에 신참병은 을에 위치에 있다는 이유로 재미삼아 했을지 모르나 저녁 점호시간만 되면 항상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있어야 했다.

그 시절 학교에는 운동선수들이나 밴드부 같은 경우 선후배의 구분이 명확하여 마치 군대와 같은 규율처럼 후배들은 선배의 지배 아래 존재하였다.

선배의 과격한 행동들은 후배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 또한 문화처럼 받아들이고 유전되었다.

선배는 자신을 과시하고 후배를 억압하는 것을 재미로 삼았지만, 후배들은 항상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 되었다.

시대가 변하고 이제는 그러한 문화가 점차 바뀌어 폭력과 억압의 행동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시간 그러한 학교폭력을 당했던 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때의 공포의 시간들이 잊혀지지 않고 심하게는 트라우마로 작용하여 유사한 일을 당할 때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도 있다.

가해자는 재미삼아 했을지 모르지만 당한 자에게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이 되는 것이다.

힘의 지배를 통해 갑의 위치에서 을에 위치에 있는 자에 대한 억압적 행위는 사라져야 하고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행동이다.

이제 그러한 문화가 모든 곳에서 없어져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휘해 보지도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남아있는 학교폭력이나 단체 안에서의 왕따와 같은 그릇된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행위를 타인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정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도 상대방이 누구이든 정당한 대접을 해주어야 한다.

요즘 다시 미투가 유행처럼 나오고 있다.

그로 인해서 대중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자들도 있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시기에 모든 활동을 접어야 하는 유명한 선수나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인기와 실력으로 인해 자숙하지 못하고 적당한 시간만 지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자도 있겠지만 자신의 철없던 지난 시간의 행동을 절실하게 후회하고 자책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유명인에게 대중들의 분노를 만들 수 있는 행동은 그동안 만든 힘겨운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를 만들 수 있는 사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제 반대로 갑의 위치에 있게 된다.

언제든지 자신이 터트릴 때 폭발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파괴력을 가졌다면 더욱 갑이 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미투 운동이 무절제하게 전개될 때 생겨날 수 있는 또 다른 갑질의 행위이다.

모든 사람은 많은 과오를 가지며 살아간다.

누구도 완벽한 삶을 이루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을 가해한 자에 대한 지난 시간의 분노를 갑의 위치라는 힘의 논리로 갚아주겠다는 마음이라면 똑같은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의 위치에서 끌어내려 다시는 대중 앞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는 증오심이라면 똑같이 되갚는 것에 불과하다.

즉 자신에게 잘못된 행위를 했던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투를 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지난 시간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받고 싶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시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당사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있다.

사과가 목적이라면 먼저 당사자에게 요구하고 진정한 사과를 받는 방법도 고려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진정한 사과가 없다면 공개적으로 해도 될 거라고 여겨진다.

미투 운동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무절제한 공개 행위가 또 다른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전주남부교회 강태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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