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지인으로부터 한 달 된 푸들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아 지금까지 한 가족으로 살고 있다.

시골 출신인 나에게 집에서 키우던 ‘개’란 동물은 누렁이 아니면 흰둥이 또는 검둥이란 이름이 전부였고 동요 가사처럼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하고 반겨주던 가축이었다.

그런 흰둥이가 옆집 개와 싸워 피를 흘리고 온 날은 마음이 아파 울기도 하고, 꼬물꼬물 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을 때는 어찌나 귀엽던지 그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 
 
처음 강아지를 분양받을 때 살고 있는 집이 공동주택이어서 이웃들에 대한 미안함에 많이 망설였었다.

또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면 똥, 오줌 치워야 하고 산책에 목욕도 시켜줘야 한다고 하니 애기 하나 키우는 것 이상의 정성이 들어간다고 하여 이만저만 망설여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당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바람에 부담감을 가득 안은 채 집에 들이게 되었는데 그 세월이 벌써 9년이 흘렀다. 
 
예전에는 강아지, 고양이 등 집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동물들을 ‘애완동물’이라 통칭하였다.

‘애완’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동식물이나 공예품 따위를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보며 귀여워 함’이라고 되어 있다.

주체를 사람으로 동물을 객체로 여긴 말로 생각된다.

그러던 것이 근자에는 ‘반려 동물’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배우자를 이야기 할 때 ‘평생의 반려자’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 ‘반려’라는 말은 동행 내지는 주체와 객체가 없이 동등한 입장을 나타낸다.

언어적 표현도 이렇게 바뀐 것을 보면 반려 동물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 주는 것으로, 또 하나의 ‘가족’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인간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주말엔 반려견 ‘코코’를 데리고 자주 효자동에 있는 문학대 공원을 찾는다.

그 곳에 가면 다양한 종류의 반려견들이 마음껏 뛰어 놀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과 몸싸움 장난을 치며 놀기도 한다.

흡사 어린 아이들 노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문학대 공원은 선사 시대 마전 고분군과 유물을 전시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장소인데 개들이 워낙 많이 나와서 뛰어 놀다 보니 잔디 등 시설물의 훼손이 염려될 뿐 아니라 유물로 보존되는 장소에 개들의 배설물이 뿌려지는 것이 정말 미안하고 안타깝다.

대변은 대부분 즉시 수거를 하는데 소변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반려견은 나에게는 정말 예쁘고 소중한 존재이지만 개를 무서워하고 불쾌감을 갖는 사람들은 쉼터이자 산책로인 문학 공원을 이용하기에 불편이 있다.

실제로 개로 인하여 견주와 행인의 의도치 않은 말다툼도 보곤 한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일부 도시에서는 ‘개 공원’을 별도로 조성하여 반려견과 견주가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고 하니 우리 지역에서도 꼭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예전에는 동물애호가들을 보고 뭐 저렇게 유난을 떠나 싶기도 했지만 내 자신이 반려견을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악어 백을 만들기 위해 피부가 산 채로 벗겨져야 하는 악어의 눈물과 다운 점퍼를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채 털을 모조리 뽑혀야 하는 오리는 차치 하고라도 우리 주변에선 굶주린 길고양이들이 어느 곳에서나 목격되기도 한다.

출퇴근길에는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이 눈에 들어와 미간을 찌푸리게도 한다.

또한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어가는 물고기와 바닷새를 보고 지구 환경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이 세상은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만이 사는 공간은 결코 아니다.
 
현대 사회는 반려 동물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병들었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버려지는 반려견들도 많다고 한다.

반려 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인간과 반려동물이 공존하는 방법들을 찾아야 할 때이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고, 그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이며, 함께하는 공간들도 늘려가야 할 것이다.

사람과 동물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며 공존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갈망해 본다.

/박병철 전북농협 노조위원장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