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자유전 어디갔나··· 허술한 농지법

'경자유전' 농지법 제6조 규정
농지 취득시 20km 통작거리 폐지
주말-체험 세대별 1천㎡ 미만 소유
16개 예외조항 다수 투기 대상돼
LH직원 신도시투기의혹 같은 맥락
생육 기간 2년 이상 식물 경작시
농업인 아닌 개인 농지 소유 가능

LH직원 농지구매시 농사목적 없어
영농법인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로
값싼 농지 사들여 지분 쪼개 팔아
참여연대 토지 의혹 98.6% 농지
고물상-건물부지 등 타용도 사용
농지법-부동산실명법 위반 수사
3년간 농지법 위반 3천398ha 처분
가짜농부 2만5,338명 '휴경' 최다

이원택 가짜농부방지법 대표발의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이행관리
농어업경영체법 사전신고제 도입
정운천 지역장 농업경영인정해야
경실련 비농업인 소유 규정 최소
농업경영계획서 이행 의무 주장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세우기 위해 ‘농지법’을 만들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농지법은 수많은 예외규정을 통해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무너졌고, 상당수의 비농업인이 농지를 소유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에서 비롯된 비농업인의 농지 투기가 이 같은 사정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LH 사태로 촉발된 비농업인의 농지 투기 양상과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 비농업인의 투기를 막기 위한 방안을 짚어본다.
/편집자주  



▲‘경자유전’ 어디 가고...허술한 농지법  

‘경자유전’은 지난 1949년 농지개혁 이후 헌법에 규정된 원칙이다.

헌법 제121조 1항에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함)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다른 사람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짓는 일)는 금지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헌법은 농지의 핵심인 경자유전 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자세한 규정은 농지법에 명시했다.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는 농지법 제6조에서 규정한 농지 소유 제한 조항이다.

제3조 2항에는 ‘농지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유하거나 이용돼야 하며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사전 투기 의혹의 근본 원인으로 ‘유명무실한 농지법’이 문제시되고 있다.

특히 현행 헌법과 농지법상 농지를 소유하려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하지만 각종 예외 조항과 함께 허술한 관리 시스템으로 이 같은 대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농지법 제6조와 제3조 2항 규정에도 농지 이용 규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조금씩 완화됐다.

지난 1996년 농지 취득 시 20㎞ 통작거리 제한(농지 소재지와 토지 소유자 거주지·주민등록 소재지와의 거리)이 폐지됐다.

2002년 12월에는 국민들의 주말·체험 영농을 위해 세대별로 1000㎡ 미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히 농민이 아닌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게 된 배경은 농지법에 규정돼 있는 수많은 예외 규정 때문이다.

굳이 농사를 짓는다고 입증하지 않아도 합법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이 많다.

농민이 아닌 사람이 농지를 취득하려면 실제로 농사를 짓겠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어떤 작물을 얼마만큼 지을 것인가를 농업경영계획서를 통해 증명해야 하고, 실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마을 이장이 확인하는 자경확인서가 필요하다.

이후 농지취득자격증명서가 나오고 등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농지법에 있는 총 16가지의 예외 조항은 비농업인의 합법적 농지 보유와 보유 증가를 막지 못하고 있다.

예외조항 가운데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조항은 △사망 후 상속자가 비농업인이어도 농지 소유가 가능 △일명 주말농장으로 불리는, 취미농도 면적 1천㎡ 미만 농지를 취득자격 증명 없이 매입 가능 △이농 후에도 기존 토지를 소유한 경우 유지 가능 △다른 농업인에게 임대차, 사용대차 등이다.

문제는 농민이 아니어도 농지 구입이 가능하다는 점인데 이 같은 세부조항을 놓고 농지 관련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LH 직원들의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땅 투기 의혹 과정도 마찬가지다.

농업인이 아닌 LH 직원들이 어떻게 농지를 매입했고 수천 수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었는지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농지법 예외 조항은 생육 기간 2년 이상인 모든 식물을 경작할 경우 농업인이 아닌 개인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처럼 농지법의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농업인의 농지가 땅 투기장으로…  

내부개발 정보를 활용해 땅 투기에 나섰던 LH 전북본부 직원 A씨는 3기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인근의 광명시 노온사동 논 3천663㎡를 매입했다.

내부 정보로 형수, 동생, 7촌 등 친인척 5명의 이름을 빌려 차명거래를 했다.

A씨 등은 해당 농지(논)를 구입할 때 농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투기성 목적으로 땅을 매입했다는 의혹과 함께 법의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전주시민 7명도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예정지 인근에 논·밭을 매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닌 가짜 농부였다.

또한 한 영농법인은 지난 2017년부터 최근까지 약 70여 차례에 걸쳐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시·군에 제출해 농지를 매입한 뒤 이를 다시 분양하는 방법으로 100억원 상당의 이익을 챙긴 정황이 드러났다.

허위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한 비슷한 가짜 영농법인 등 80여 곳도 값싸게 농지를 사들인 뒤 지분을 쪼개 되파는 수법의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비농업인과 가짜 영농법인 등의 농지매입은 LH 사태 초기부터 예고됐다.

참여연대 등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의혹이 제기된 매입토지의 98.6%가 논ㆍ밭 등 농지다.

헌법상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사짓는 사람인 농민과 농업법인만 소유할 수 있다고 못박고 있다.

하지만 이번 투기 의혹이 제기된 LH 직원들은 대부분 농업 목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투기 목적에 가까웠으며 엄연한 농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참여연대가 최근 3년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거래된 토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본 결과 대부분 LH 직원들과 같은 농지법 위반 혐의가 의심되는 사례들이었다.

실제 현장 조사에서도 농지 고유 목적 이외에 고물상, 건물부지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거나 오랜 기간 방치된 사례도 다수 포함됐다.

이에 따라 참여연대와 민변은 지난 3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농지법 위반 투기 의혹 사례를 발표하고 당국의 광범위한 농지법 및 부동산실명법 위반 조사와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농지 보전 및 이용에 관한 관리감독 체계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2017~2019년 3년간 총 57만1천ha에 대한 농지 이용 실태조사를 벌여 이중 3천398ha(33.98㎢)에 대해 농지법 위반을 이유로 농지 처분 통지를 내렸다.

농지를 소유하고도 농사를 짓지 않은 ‘가짜농부’도 2만 5천338명이나 적발됐다.

연도별로 2017년 1만 1천641명(1.5%), 2018년 7천205명(0.5%), 2019년 6천492명(0.6%)이다.

농지 처분 통지 사유별로는 농사를 쉬고 있는 휴경이 전체 77.5%인 2천635ha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상속이나 이농 등 법으로 정한 사유 외에 불법으로 타인에게 임대한 농지는 606ha(17.8%)다.

위탁은 0.5%(16ha)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투기의 온상이 된 농지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농지 이용 실태 조사를 전수조사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농지법 개정으로 비농업인 투기 막아야  

비농업인의 투기를 막기 위한 농지법 개정 요구가 거세다.

농지 투기 근절 목적의 개정안은 지난달 26일 기준 모두 12건에 이른다.

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를 계기로 농지법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된 것이다.

개정안은 농지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로 발의됐지만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주말·체험 영농 목적 농지 △상속·이농 농지 △농지취득자격증명(농취증) 취득 △농지 실태조사 등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전북지역 국회의원들의 농지법 개정안이 눈길을 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택 의원(김제시∙부안군)이 대표 발의한 농지법 개정안은 ‘가짜 농부 방지를 위한 농지투기 방지법’이다.

핵심은 농지취득 이후에도 해당 농지에 대한 이용실태를 엄격히 조사해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즉시 처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행위를 통해 사익 편취를 방지하고 경자유전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현행법은 농지를 취득하려는 자는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농지 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받은 자가 농업경영계획서 내용을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일부터 1년 이내에 확인하도록 함으로써 투기의 목적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행위를 근절하도록 했다.

이 의원은 농업법인의 농지 투기방지를 위한 ‘농어업경영체법’ 일부 개정안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서는 불법 부동산업을 영위하는 농업법인을 제재할 수 있도록 농업법인 설립 전 사전신고제를 도입하고, 국세청 등의 협조를 받아 법인실태 조사를 강화하며, 부동산업 영위를 통해 얻은 부당이득 환수를 위한 과징금 부과, 대표자 등에 대한 벌칙 도입 등 현행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도록 했다.

전북 출신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비례)의 농지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시 작성하는 농업경영계획서의 기재 항목을 추가했다.

시·구·읍·면의 장이 농업경영계획서를 검토해 농업경영을 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농지에 대해서는 발급일로부터 5년 동안 매년 이용 실태를 조사하도록 했다.

또 거짓이나 부정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 발급 시 1년의 처분의무기간 없이 즉시 처분명령을 내리도록 하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해당 토지의 개별공시지가에 따른 토지가액에 해당하는 금액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을 강화했다.

정 의원의 개정안은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는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과도한 농지 규제는 농촌이 점차 사라지는 여건 속에서 청년농업인 등 향후 잠재적인 농업인의 농촌 유입을 억제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 정부안을 완화한 법안이다.

시민단체도 경자유전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 실현을 위해 농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경실련의 농지법 개정 방향의 핵심은 첫째, 농지취득 조건 강화다.

농지취득과 이농 등의 이유로 농지를 계속 소유할 경우 예외 없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제 경작의무를 이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또한 농지를 취득한 뒤 일정 기간은 매매를 금지하게 해 소위 ‘농지 쪼개기’를 막는다는데 중점을 뒀다.

둘째는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 예외규정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비농업인 상속농지는 일정 면적인 1만㎡ 이하 경작을 의무화하고, 농지상속 신고도 의무규정으로 개정한다.

농업회사법인 농지 소유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주말‧체험영농 목적으로 농지취득이 가능했던 규정도 폐지한다.

또한 ‘투기 방지를 위한 농지취득 관련 규정 강화’를 위해 농지취득 및 계속 소유 시(이농) 예외 없이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농지 취득 시 농업경영 형태를 구분(전업·겸업)하며, 농업경영계획서의 내실화 및 계획에 따른 이행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에서는 이달 중 농지 투기를 막기 위한 법 개정 논의를 본격화한다.

국회 농해수위는 지난달 27일 전체회의를 열고 비농민의 농지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농지법 개정안’ 등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회부했다.

이에 따라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촉발된 농지제도 개편 논의가 속도를 낼 전망이다.

법안소위는 이달 중 전문가 간담회를 열어 농지제도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법안 심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지가 땅 투기 대상이 아닌 진정한 농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새롭게 법제화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신우기자 l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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