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혁용 개인전 '완판본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 오늘부터
나무로 만든 종이, 종이로 만든 책 형상화 작품에 담아

엄혁용의 34회 개인전 ‘완판본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가 13일부터 26일까지 우진문화공간에서 진행된다.

이번 전시 역시 기존에 보여줬던 ‘책은 나무, 나무는 종이, 종이는 자연, 자연은 사람, 사람은 책’이란 명제와 맥락을 같이 한다.

나무에 책이 걸렸다.

봄에 싹을 틔워, 여름내 뜨거운 볕과 세찬 비바람 속에서 꿋꿋이 견디고 드디어 책-열매를 맺는다는 상상을 엄혁용은 시각화해냈다.

책은 인간이 발명해낸 저장매체 중에서 가장 오랜 된 것이리라.

문자의 탄생과 거의 동시에 기록하는 곳이 어디든 상관없이 말이다.

문자가 있음으로 해서 기록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은 인류의 역사를 다음세대에 전하는 방법으로 여겨지면서 책은 인류역사에서 중요한 것이 되었다.

진시황제가 벌였던 ‘분서갱유’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사상을 기술한 책이 살아남은 것으로도 책의 중요함은 증명되는 일이다.

이런 ‘책’을 나무로 깎고 다듬고 색을 입혀 형상화 작품을 엄혁용은 ‘직지, 새로운 천년을 꿈꾸다’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책들이 전시장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고, 벽에는 책이 걸렸는데, 이런 정경에서 책이 가진 이데아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체인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깎아서 만든 것이라는 그의 작품에서는 거친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책이 가진 형상의 아우라를 잘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형상을 깎고 거기에 색을 칠하고 다시 벗겨내기를 반복한다.

사실 현대조각이라는 것이 예전 양상과 달리 너무 변해서 예술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닌지 의심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손으로 만들었냐 아니냐 하고 따지는 것이 ‘후기산업사회’라고 불리던 시기도 한참 넘은 마당에 부질없는 논쟁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재료와 기계, 그리고 타인의 힘을 빌려 작품을 제작하는 일상적인 조각장르 속에서 이번에 보여준 엄혁용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소위 정보가 넘쳐나는 가상공간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가상과 물신이 넘쳐나는 시대에 숙달된 손의 맛(장인의 손) 혹은 진한 땀 냄새(노동의 의미)를 맡을 수 있는 그의 작품이 잔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임창섭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현대사회가 진정한 장인이 없는 이유는 힘든 지난한 시간을 견디어 낼 인내와 여유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며 “편법과 꼼수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오히려 정도와 정의를 찾는 것은 무능력이라는 의미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에서 엄혁용의 작품은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고 평했다.

엄혁용 작가는 “나무, 자연은 사람에게 문명의 재료가 됐다. 나무로 종이를 만들고 종이가 모여 책이 됐고, 사람들은 책을 보지만 그것은 결국 나무다”며 “나는 지금 나무를 만들고 책을 만들고 꿈을 만든다. 세상의 그늘이 되어 줄 절대 죽지 않을 마음속의 나무를 만들고 있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고 밝혔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작가는 국민대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개인전을 비롯해 서울, 전주, 광주, 밀라노, 뉴욕, LA, 햄튼 등 다양한 국제전 및 단체 초대전 300여회에서 활동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전라북도 미술대전, 소사벌미술대전, 경북미술대전, 온고을전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을 역임했다.

제14회 중앙미술대전 종합대상, 코리아아트페스티벌 특별상, 금평미술상, 한국미술상, 파리10개국 초대작품전 최우수상, 스위스20개국 국제초대전 최우수상, 한국기초조형학회 최우수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전북대 예술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석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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