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와 사람 - 황승주 도립국악원 단무장

“큰 상을 탔지만 기쁘기보다는 덤덤하다. 어깨가 무겁고 대통령상 수상자로서 제 역할에 온 힘을 기울이겠다.”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에 근무하는 황승주 단무장은 지난 6월 19일 열린 제8회 곡성전국종합예술대전에서 김일구류 아쟁산조로 종합대상을 차지하며 대통령상 수상 영예를 안게됐다.

타 참가팀들의 연주를 들어보니 대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그만큼 이 대회를 위해 갈고 닦은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그 날 따라 연주가 잘 됐다.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상을 수상하니 후련한 마음과 함께 담담했다. 비대면으로 대회가 진행돼 더욱 그런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광주 출신이다.

고수로 활동했던 외할아버지와 판소리 광주시무형문화재인 어머니 이순자 명창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접했다.

하지만 국악을 정식 시작한 것은 한참 훗날인 나이 20살 무렵이었다.

이전에는 국악보다는 운동이 좋아 형과 함께 체력단련과 운동에 전념하게 됐다.

어느 날 어머니의 권유로 국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판소리를 전공했지만 너무 어려운 나머지 어머니는 악기연주를 권했다.

아쟁이 마음에 들어왔다.

광주에 신상철 명인에게 박종순류 아쟁산조를 익혔다.

아쟁을 접한 지 6개월 후 독학에 들어갔고, 국방부 군악대에서 그 실력을 탄탄하게 다지게 됐다.

스승의 지도 아래 공부를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 길 대신 홀로 연습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루 10시간씩 암기하며 손이 부르터라 연주에 임했다.

누구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가능했다.

2000년 전북도립국악원에 입사를 했고, 2001년 김일구 명인을 찾아 본격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20년 넘게 김일구 명인을 사사했고, 대통령상 수상이란 좋은 결과도 얻게 됐다.

도립국악원 입사도 당초 목표는 아니었다.

외부활동을 좋아해 단체나 기관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도립국악원에서는 창극단이나 무용단 공연 시 필요한 수성반주팀을 모집했다.

관현악단에 비해 비교적 자유스러워 응시를 했는데, 얼마 못가 수성반주팀이 해체되면서 자연스럽게 관현악단에 흡수됐다.

아쟁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27살에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후 직장생활로 관심을 가지지 못하다 지난해 도전한 대회에서는 국회의장상을, 올해는 대통령상을 연거푸 수상하게 됐다.

상의 비중은 제일 작지만 가장 먼저 받은 장관상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아쟁과 함께 한 지 26년이 지났다.

사람 목소리와 비슷하고 정서와 가장 잘 맞았다.

대통령상을 수상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관현악단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하며, 제자들과 함께 활동 영역도 넓힐 계획이다. 무엇보다 국악 발전에 도움이 되는 한 축을 담당하고 싶다. 참으로 고민이 많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은 채 묵묵하게 자리하고 싶다."

전국국악경연대회 종합대상(문체부 장관상), 빛고을전국국악경연대회 단체부 종합대상(국회의장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전통예술협회 전북지부장, 전북국악관현악단 대표, 한국국악협회 광주지회 이사 등 활동하고 있다.

/조석창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