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학교 일제잔재 현황 조사결과
도교육청 25개교 교가 청산대상 선정
친일작곡가-군가-엔카풍 교가 다수
역군-학도-건아-용맹 등 표현 등장

교표 1순위 욱일문-일장기 등 21개교
2순위 월계수 모양 75개교 등 조사돼
학교현장-행정분야 용어-표현 개선
전북교육정책포럼 조례 제정 필요
일제잔재 교육활용-인식개선 강조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사전 수록 단어
16개 선택 각급 학교 안내자료 발송
가이즈카향나무 대체 나무 심기
역대 학교장 사진 공개 게시 금지 등
지속적인 日잔재청산 교육-캠프 활용

미래세대를 교육하는 학교 내에도 아직도 유·무형의 일제 잔재물이 수두룩해 청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매우 높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일제 잔재가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은 친일파와 친일 행적에 대한 역사적 단죄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탓이다.

더욱이 친일 행위를 한 친일파 후손들이 부와 권력의 대물림을 통해 해방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북교육정책연구소가 전북지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친일 인물과 일제 잔재를 조사한 결과,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거나 미화·찬양하는 일제 잔재물이 다수의 학교에서 드러났다.

민족정기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바로잡기 위해선 학교 내에 일제 잔재를 절대 방치해선 안 된다.

이에 전북지역 각급 학교에서 일제 잔재물이 남아 있는 교육현장 연구 분석 및 결과를 토대로 전북도교육청이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도내 학교 내 친일교가·욱일문·벚꽃문양 등 일제 잔재물 여전히 남아

도내 학교에서 ‘욱일문과 일장기, 국화문, 월계수’ 등 관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무형의 일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전북교육정책연구소는 전북의 학교 내 일제 잔재의 현황을 파악하고, 기초 자료를 구축·정리해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진행한 ‘일제 잔재 현황’ 연구보고서를 지난 7월에 공개했다.

‘학교 안 일제 잔재 -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라는 제목의 연구는 초·중등교사 6인, 정책연구소 파견교사 2인, 담당 연구사 등 9인이 TF를 구성해 지난 1월부터 6개월 여간 진행해왔다.

이번 연구는 도내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친일 인물·교가·교표·교목·교화· 교훈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석물 및 건축물, 학교문화 및 용어에 대해 살펴봤다.

그 결과, 교가는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인명사전에 의해 친일 인물로 분류된 작곡가가 작곡하거나 군가풍·엔카풍 멜로디를 포함하는 학교가 다수 발견됐다.

특히 ‘조국에 바쳐’, ‘○○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 같은 일제 군국주의 동원 체제에서 비롯한 비교육적인 표현을 포함한 교가도 있었다.

도교육청은 25개교를 청산 대상 교가로 선정한 가운데 2019년 10개교가 학교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교체 작업을 진행했으며, 나머지 학교들은 올해 교가 교체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교표에서는 1순위 욱일문·일장기·국화문·벚꽃문양의 학교가 21개교로 조사됐다.

욱일문과 일장기는 일제 강점기 군사 마크로 사용됐고, 벚꽃문과 국화문은 일본 황실에서 사용된 마크로 현재도 일본 황실 및 훈장에서 계승되고 있다.

전쟁과 경기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2순위‘월계수’모양이 75개교, 3순위는 1순위와 2순위의 유사형태로 41개교, 4순위 맹수·맹금류·방패 등 군 관련 29개교 등이다.

일제 잔재로 규정한 가이즈카 향나무, 히말라야시다, 금송을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가 91개교로 집계됐다.

학교 부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석물이나 건축물도 조사됐다.

군산 발산초의 옛 일본인 농장 창고, 전주 풍남초와 전주초의 봉안전 기단 양식, 일부 학교의 충혼탑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 잔재로 남아 있는 학교 현장·행정분야 용어와 학교문화는 교육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개선대상 용어로는 시정표(→시간표/일과표), 시건장치(→잠금장치), 납기(→내는 날), 신입생(→새내기), 절취선(→자르는 선), 졸업사정회(→졸업평가회), 내교(→학교 방문) 등 학교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이 있다.

또한 역대학교장이나 기관장 사진 게시는 외부공간에 게시하거나 차렷·경례 같은 군대식 인사 표현도 바꿔나가야 할 일제 잔재로 꼽혔다.

이와 관련, 연구진들은 일제 잔재 관련 조례 제정, 역사 교육 등 교육청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 학교 안 일제 잔재 관련 석물이나 건축물 현황 파악 및 교육적 활용, 일제 잔재 인식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및 찾아가는 지원단 운영 등을 제안했다.

전북교육정책연구소는 이번 연구성과를 토대로 전북지역 학교의 일제 잔재 현황을 주제로 한 포럼을 오는 9월 말 개최할 예정이다.

최은경 전북교육정책연구소장은 “그간 교육공동체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청산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제 잔재의 의미에 대해 인지하고 생활 속에도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번에 발간된 책자는 전북의 각 학교, 교육지원청, 직속기관과 국회도서관 등 외부기관에도 전달해 활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학교에 존재하는 일제잔재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

전북교육정책 포럼 개최 올해 76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학교에 존재하고 있는 일제잔재 실태를 공유하고 향후 대책을 고민해보기 위해 전북교육청 2층 강당에서 8월 13일 ‘전북교육정책 포럼’이 개최됐다.

‘학교 안 일제잔재, 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전북지역 일선학교 교장과 교감, 교사, 각 교육지원청 관계자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은 권익산(원광여중), 오경택(성심여고), 채창수(완산고), 권혜수(영생고), 문선빈(송북초), 라민아(익산가온초), 권민지(종정초), 손형태(부안고) 교사의 주제발표로 시작됐다.

이들 모두 일제 잔재 조사에 참여했던 교사들이다.

실제 전북교육정책연구소는 지난 1월 6명의 초·중·고 교사와 정책연구소 파견교사 2명, 담당 연구사 등 9명으로 구성된 TF를 구성한 뒤 일선 학교 내 일제 잔재 현황파악에 착수했다.

이어 TF팀은 그간 6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최근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일제잔재 조사에 나선 것은 도내에서 이번이 처음이었다.

참여했던 8명의 교사들은 각자 자기가 담당했던 조사했던 내용을 발표했다.

발제에 나선 교사들은 “조례 제정과 교육청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을 통해 일제 잔재 인식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단 운영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제에 이어 윤상원 전북대교수를 좌장으로 한 자유토론이 진행됐다.

권민지 교사는 “일제잔재를 무조건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교육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오경택 교사는 “학교에 남아있는 일제잔재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위해선 이를 추진할 수 있는 학교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학생까지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학교장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청중과의 질의 응답시간에서 김진 김제봉남초 교장은 “일재 잔재 조사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의미가 있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인식을 바꿔가는 큰 동기가 될 것”이라며 “일제에 부역했던 사학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북지역 사립학교에 대한 역사적 배경 등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김승환 교육감은 “교목과 교표, 교가는 물론이고 학교에서 무심코 쓰는 언어에도 그 나라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면서 “불행하게도 우리 학교 곳곳에서는 여전히 일제잔재가 남아있다. 교육감이 되고 나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에 일제잔재 실태파악에 자발적으로 나서 준 교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면서 “앞으로 교사들의 이러한 노력에 도교육청이 전폭적인 지원으로 호응할 것이다. 일제잔재 청산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북 25개교 군가 엔카 연상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사용

전북지역에서 25개교에서 친일 작곡·작사가가 만든 군가(軍歌)풍 엔카(演歌)풍'의 노래가 학교를 상징하는 교가를 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심각한 충격을 던져줬다.

전북교육청과 전북중등음악연구회는 지난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상반기까지 전북지역 모든 학교의 교가를 수집·분석했다.

이 중 초등 5개교와 중·고 20개교가 일제 잔재 교가를 쓰고 있었다.

친일 인명 사전에 수록된 친일파, 김성태와 이홍렬이 각각 8곳으로 가장 많았고, 김동진 6곳, 현제명 2곳, 김기수 1곳 등이었다.

김성태가 작곡한 익산의 한 중학교 교가 후렴구에는 '한 길로 굳세렸다 남성의 건아'라고 표현됐다.

김동진이 작곡한 전주의 한 고교 교가에는 '배워서 높이 솟는 완산의 학도'라는 후렴구가 들어간다.

전주의 한 중학교는 신석정이 작사한 교가에 '내 나라 내 겨레의 뻗어가는 길이 목숨 다하도록 이어갈 우리'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들 교가에는 '역군, 학도, 건아, 용맹'과 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군가'나 '엔카(일본 트로트)'를 연상하는 멜로디의 교가도 있다.

김제의 한 중학교는 일본 전통 음계인 5음계의 특징을 담은 교가를 부르고 있다.

전주의 한 중학교는 교가라기 보다는 군가에 가까운 반주가 흘러 나온다.

연구회는 친일파의 제자가 만든 교가까지 고려하면 일제 잔재 교가는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두고 '현재의 교육방향이나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과 '집단의식을 강조하는 교가가 꼭 필요하느냐'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이에 도교육청은 학생들이 자주 부르는 교가에서 일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전북중등음악연구회 소병수 사무국장은 "가사를 보면 학도, 횃불, 일꾼이라든가 지금 시대와 맞지 않은 표현이 담겨 있다"면서 "희망 학교를 대상으로 개사 작업을 하는 등 일제 잔재 청산 및 역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교육현장서 일제 잔재 뿌리 뽑기…일제 잔재 청산 교육현장 용어 개선 나서

전북교육청이 교육현장의 올바른 역사의식 제고로 민주적인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교육현장 용어 및 제도 개선에 나섰다.

도교육청은 지난 2019년 3.1운동 및 건국 100주년을 맞아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올바른 역사의식 고취와 민주적 학교문화 조성을 위해 도내 각급 학교에 안내자료를 발송하고 교육현장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 용어 및 제도 개선을 추진했다.

개선 용어로 ‘가오→얼굴’, ‘구라→거짓말’, ‘기스→흠집’, ‘꼬붕→부하’, ‘나시→민소매’, ‘다데기→다진양념’, ‘뗑깡→생떼’, ‘뗑뗑이→물방울 무늬’, ‘만땅→가득채움’, ‘오뎅→어묵’ 등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일본어에서 온 어휘로 언어순화가 필요한 단어를 ‘일본어에서 온 우리말 사전(이한섭)’에 수록된 3634개 단어 중 16개를 선택해 우선적으로 안내했다.

또 교육활동과 관련해 군대의 점호를 본뜬 행사인 ‘애국조회’를 지양하고, ‘훈화→OO선생님 말씀’ 등으로 순화하며, 군대식 인사표현인 ‘차렷·경례’를 ‘안녕하세요’ 같은 자연스러운 인사말로 하도록 권고했다.

특히 친일파 행적이 확인된 작사·작곡가의 교가 교체를 지원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당시 학교에 많이 식재된 ‘가이즈카향나무’를 다른 나무로 심기, 일본인 학교장의 사진 등을 학교 벽면이나 현관 등 공개적인 장소에 ‘역대 학교장 사진’으로 게시하지 않기로 했다.

‘운동장 조회대’를 학생 휴게 및 놀이공간 등 구성원과 협의해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기, 일제강점기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만들어진 ‘3-3-7박수’를 월드컵 응원박수 등 새로운 방법으로 모색하기 등을 권고했다.

도교육청은 학생회(학급)중심 토론회, 홍보 활동, 순화어 사용 캠페인, 학교 내 ‘일제 잔재’찾기 프로젝트 수업, 지속적인 일제 잔재 청산 계기 교육, 역사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일제 잔재 청산’자료를 활용할 방침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도내 교육현장에서의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 청산은 우리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선 매우 중요한 일인 만큼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면서 “학교 내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 문화 청산을 통해 올바른 역사의식을 높이고 학교 구성원들의 공동 노력으로 민주적인 학교문화를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병창기자 wooju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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