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의 천하통일, 그곳에 묵자가 있었다

유가의 실용-실천정신 계승 발전
기독교-동학과 같은 묵자의 이론

완역본을 읽을지 고민했었습니다.

병법 등이 모두 나온 완역본의 살벌한 두께도 겁났고, 어디까지나 <묵자>의 사상이 궁금했던 만큼 쉽고, 평점이 좋은 쪽을 택했습니다.

잘한 선택이었는 지는 다른 분의 완역본을 다시 읽고 대조해야만 하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을 접하면서 儒家와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한 墨家가 서쪽 노나라에서 나왔고, 도가나 법가 등이 동쪽에서 나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평원, 고원, 평야나 완만한 구릉이 연속되는 중국 서쪽의 지리적 여건은 어느 한 나라의 통치가 마음에 안 차면 쉽게 이주할 수 있어 지도층 등의 인격 수양이나 공생을 논하는 학문이 득세했답니다.

반면에 중국을 통일하는 진나라 등이 있는 동쪽은, 산악 지형이라 도망가기가 힘이 들고, 주위에 싸움깨나 하는 흉노족 등의 사나운 이민족이 언제라도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라, 남들 생각은 사치이고 제 한목숨 잘 보존하는 것이 급선무라서 <노자>나 법가가 태어났다는 군요.

<노자>와 법가는 병가 사상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라고요.

덕분에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공자님>은 춘추시대 말기, 즉 아직 철기 시대가 되지 않았고 가축을 이용한 농경이 도입되지 않아 농업 생산의 획기적 증가가 없을 때 죽었으나, <묵자>는 농업 생산의 증대로 전란의 시대로 접어든 살벌한 전국시대에 태어나 유학의 비실천적인 서생 분위기를 떨쳐 일어나게 되었다 합니다.

 유가의 귀족적이고 비실용적인 성격은 춘추전국시대 내내 모든 제후국에서 배척 받습니다.

묵가는 유가에서 실용적, 실천적인 발전적 계승을 하고 진의 천하통일에 기여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격이 대단한 武人들이었기에 <진시황>의 황권에 위협이 될 수 있어서 그들을 토사구팽했다 합니다.

그리고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하는데 당시에는 유가의 위치가 존재감이 전혀 없어서 실제로는 분서갱묵(焚書坑墨)이었다는 군요.

서로 좋은 것은 특허 없이 본받는 바람에, 유가 특히 <맹자>의 한심스러운 철학에의 발전적 반동으로 墨家가 출현했는데요.

묵가의 사상을 흡수하여 유가의 <순자(荀子)>가 더 발전시키는 바람에 후세에 존재감이 사라졌었는데요.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한나라 때 황권 강화를 위해 맹자를 받아들여 전국시대 시대상에 맞는 <순자>의 이론 마저 존재감이 없어졌답니다.

<묵자>의 이론은 모두 기독교나 동학의 이론과 거의 같습니다.

다만 무장(武裝)으로 전란을 막으려 했던 협객의 모습들을 한 것, 분배가 생산의 증대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보입니다.

택무이종사(擇務而從事), 즉 긴박한 일부터 먼저 처리한다는 어쩌면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요령처럼 실천적인 성격을 보이는 점도 특이합니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상은 본문을 통해 확인하셔요.

/박정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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