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구이평촌을 넘나들던 길, 어렵던 시절 땔감을 지게에 짐고 가쁜 숨 몰아쉬며 힘들지만 전주남부시장에서 팔아 가족들과 밥 한끼 먹을 수 있다는 기대로 쉬지도 않고 한걸음에 넘던 고개 아니던가, 겨우 사람 갈수 있는 고개가 많았음에도 보광재는 우마차가 다닐 수 있는 제법 큰 길이라는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구이평촌 고덕산 자락에 있던 보광사는 백제무왕시절에 흥했던 사찰로 전주에서 보광재를 가자면 싸전다리를 넘어서 초록바위 이팝나무의 향에 취하며 고덕산 계곡에서 사납게 흐르는 계곡물이 모이던 공수내를 건너면 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도축장을 지난다.

과거에는 보광재의 행정구역이 동서학동이었다, 현재는 서서학동의 보광재를 흑석골(검은 돌이 많다고 붙여진 지명)에서 해발288m의 보광재를 오르자면 두무소(임진왜란 때 이여송휘하 장군 두사충이 군사적 요충지요 자연경관이 빼어나 춤을 추자 타고 온 말도 하늘도, 땅도 나무도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가 있다.

두사충 두자와 춤 출무자로두두소라 하였고 70~80년대에도 학생들의 소풍 장소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검은 돌이 많아서 여기저기 탄광의 흔적들이 있었다, 난개발로 상당수 없어졌지만 흑석골을 진입하는 삼거리 오른쪽에 원형대로 보존 된 흑석굴 앞에 물이 넘치는 바가지 샘이 있다.

마을 가운데 당산나무가 방문객들을 환영하면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당산재를 지내고 있으며 35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네그루가 마을의 정취를 더 해주며 고덕산 자락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전주한지의 생산지가 되어 한지골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곳에 한지문화관 공사가 마무라 단계이다.

하늘이 보낸 효자로 천년을 동안 길손들이 향을 피우고 예를 갖춘다는 전의 이씨 제각에는 백일홍이 곱게 피었고 제각을 지키는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어 반가워한다.

흑석골의 당산재는 마을의 재앙을 막고자 다시금 시작 되었으나 할머니에게 언제부터 당산재를 지냇는지 묻자 열여섯에 이 동네로 시집을 온 게 당산재를 지내고 있었는데 지금 나이 80이 넘었다고 하신다, 마을의 안녕과 화합, 주민들이 마시는 샘물이 변하거나 흙탕물이 되지 말라고 매년 정월 보름에 지내는 세시풍속도 작년과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중단되고 말았다. 

세계적 수묵화의 거장 남천송수남화백의 유택과 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으며 유택에서고덕산의 정경을 화폭에 담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흑석골의 안쪽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꽐꽐 쏟아져 나오리라 생각이나 했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용천대를 바라보며 올라가는 길목에 숨이 차오른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 소리,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나뭇잎 소리, 새소리, 한 낮에 쏟아지는 태양을 가려주는 나뭇가지들과 도란도란 대화하며 오르다 보니 오른쪽으로 가면 탑이 있다고 한다, 최근에 건강을 찾기 위한 시민이 정성스럽게 쌓아 논 탑들이 이국의 풍경처럼 시야에 들이 온다, 어떤이는앙코르와트에 온 기분이라고 한다.

길손들에게 타는 목을 축일 수 있는 시원한 물이 나무꾼과 짐꾼들에게는 허기진 배를 물로 채우고 넘어가라는 시암골 약수터의 설화는 평촌에서 해지는 줄 모르고 밭을 매던 어머니가 너무 늦었다며 걸음을 재촉하며 보광재를 넘어 내려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바짝 엎드리고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제발 살려주세요, 집에는 어린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며 두 눈을 뜨자 호랑이는 멀리 사라지고 없었는데 집에 가서 보니 속옷이 축축하게 젖어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엎으려 빌던 곳을 다시가 보니 물기가 촉촉이 있어 파 보니 물이 나왔다는 시암골,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는 보광재 형세가 호랑이가 엎드린 형세라 하여 복항재라 불리기도 하였다는 설과 너무 잘 어울리는 이야기가 아닌가?

고갯마루에는 잠시 숨을 돌리며 소원을 빌던 성황당이 있었는데 지금은 보광정이란 정자가 길손들에게 쉼터로 제공하고 있다.

흑석골에는 흑석사가 넘어 평촌에는 보광재가 문헌에만 존재하고 있으나 보광재는 땔감과 짐을 짊어지고 우마차로 짐을 나르던 험준한 고갯길, 보광재는 우리와 함께한 우리의 삶의 고갯길이 아닌가?

땔감을 팔아 가족들에게 밥을 먹이고 땔감을 아궁에 지펴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낸 상생의 길이 지금은 소통의 고갯길로 전주시민들이 자주 찾는 힐링의 고갯길이다.

/박영진 한중문화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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