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와 픽션을 적절하게 섞은 '불모지대'는 일본 여류작가 야마자키 토요코(1924~2013)의 대작이다.

1976년도에 1권이 출간됐고 우리나라에선 5권으로 번역돼 나왔다.

일본 후지TV가 지난 2009년, 19부작 드라마로 방영하기도 했다.

내용은 전후(戰後) 일본의 종합상사들이 세계를 무대로 치열하게 경쟁해 나가는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했다.

요즘은 한일관계가 다소 냉랭한 상태지만 1970~80년대 일본과 우리나라에선 '불모지대'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삼성 등 초일류기업 특히 종합상사맨들에겐 필독서였다고 한다.

일본 종합상사의 성공사례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겠다는 의미도 있었겠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정확한 정보분석과 과감한 투자로 인한 성공은 일반 독자가 봐도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누군가 기자에게 "이 대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다소 의외의 장면을 답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성공사례가 아닌 한 여인의 상큼한 느낌이 묻어나는 대사다.

동남아 거부의 부인이자 레스토랑 여사장인 베니코(아마미 유키)는 지인의 부탁을 들어주며 어떠한 대가도 없다고 말한다.

단지 "언제나 가슴이 설레이고 싶을 뿐…"이라고 말한다.

베니코는 주인공 이키 타다시를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활동을, 결정적 순간에 전적으로 도와준다.

베니코의 '가슴이 설레이고'는 남자와의 사랑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느끼는 벅찬 감정을 나타낸다.

세상을 살면서 가슴이 설레일 때는 많다.

사업을 시작하는 이들,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젊은 연인들, 오래 헤어졌던 이들과의 재회 심지어 돼지꿈을 꾼 뒤 로또를 기다릴 때도 설레임을 느끼게 된다.

요즘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 주말 산을 간다.

그러다 보니 이번 주말에는 어느 산을 갈까 검색하는 것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새로운 산을 만날 때의 느낌, 이미 다녀왔던 산을 또 갈 때의 반가움.

이런 모든 것들이 산행을 앞두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광주 무등산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예정했던 날에 비가 온다든지, 중요한 집안 일이 생긴다든지 해서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다녀왔다.

무등산에서 보는 절경은 전주 모악산과는 또 달랐다.

모악산이 탄탄하게 솟은 수직 남성산이라고 한다면 무등산은 수직과 수평이 이어지는 화용월태(花容月態)였다.

무등산을 다녀온 뒤 이제는 10월 하순으로 잡아놓은 월출산을 가기 위해 마음이 설렌다.

짬을 내 월출산 등산로를 찾아보고, 먼저 다녀온 이들의 산행기를 읽는 재미도 좋다.

주말이니 모처럼 완행버스를 타고 가면 어떨까 생각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코로나19로 세상이 각박하고 모든 모임이 자제되고 있지만 그래도 가슴 설레는 일을 찾아보면 어떨까.

지인들 중에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거나 봉사에 관심을 쏟는 멋진 이도 있다.

명퇴한 어떤 이는 미처 못 땄던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즐겁다고 한다.

아무리 바쁘고 생활이 어려워도 가슴 설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어떨지.

'도민을 주인으로, 진실을 생명으로, 사랑을 가슴으로'라는 사시(社是)로 지난 2002년 10월 전북중앙신문이 창간됐다.

올해 19년째를 맞아 그 동안 기사를 써 나가면서 몇 번이나 독자와 기자의 가슴이 설레였을까? 첫 창간호 때의 벅찬 감동이 지금도 남아 있는 지 반문하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설레임 속에 기사를 써 나가려 한다.

/김일현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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