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대가 율곡은 남달랐다. 어려서는 동네 어른들이 모여있는 모정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어른들이 모정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안 모정 아래에서 골똘히 생각하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했다. 그러면서 심부름을 시키면 공손히 수행했다. 양반집 아이가 심부름하며 가까이 있으니 모정에서 담소를 나누는 어른들도 말이나 행동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어떤 때는 차라리 율곡이 없는 게 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끼리끼리 만나면 농담도 하고 객쩍은 소리도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천재로 소문난 양반집 아이가 가까이 있으니 말과 행동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율곡은 장년 이후부터 동네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대학자요 높은 벼슬아치인 율곡이 천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려 웃고 떠드는 모양이 인근 선비들에게도 이상하게 보였다.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율곡을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질문도 하며 말동무로 함께 놀았다. 하루는 가까운 선비가 율곡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아이들이 귀찮지도 않습니까? 사랑채나 정자로 옮기셔서 편하게 쉬시지요?”. 그러자 율곡이 대답했다. “나는 어려서 어른들 근처에서 놀기를 좋아했네, 어른들 근처에서 놀면 어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 선현의 글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오는 지혜를 배웠다네. 지금은 반대로 내가 어른이 되었으니 아이들에게 어른노릇 하는 것이네. 저절로 나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말도 조심스럽게 하니, 수양에 많은 도움이 된다네. 그러니 불편할 게 뭐가 있겠나.” 

성리학자인 율곡은 신분에서 얻어진 권위와 지위를 앞세우지 않고 몸소 실천함으로써 아이들을 교화하였고, 반대로 어른들에게는 아랫사람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가르쳤다. “밖에서는 직위가 우선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나이가 우선한다”라는 옛말이 있다. 나이는 경험과 관록이 많아서 지혜가 쌓여있고, 직위는 총명하고 탁월한 지도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어느 사회든 질서와 규범이 있고 그 사회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묵인된 풍습이 중요하게 작동되고 있다. 현대에서 말하는 건강한 사회는 경제와 문화가 자유롭게 작동되는가에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풍족함을 느끼며 만족지수가 높은 사회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대통령 후보자를 선출한다고 우리 지역까지 요란하였다. 그리고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으로 곳곳에서 물밑작업이 한창이다. 한편에선 내년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까지도 수고하는 공무원들이 많다. 어느 순간 우리 지역은 인구가 심하게 감소하였고, 재정자립도도 매우 낮은 지역으로 전락하였다. 매년 우리 지역 예산 때문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염려하는 지역민들이 많다. 삼십 년째 새만금에 대해서 변죽만 울리는 정치권의 구호도 지겹다. 

지역의 행정수장은 큰 어른에 해당한다. 큰 어른은 합당한 노릇을 해야 한다. 체감할 수 있는 물질과 정신적 위안으로 지역민을 이익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혜와 역량이 있는 사람이 행정수장이 되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지역의 예산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다. 인구수만 탓하지 않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지역에 필요하다.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지역 문화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책을 갖추며 미래를 향해 꿈을 꿀 수 있는 안내자가 되어줄 인재가 필요하다. 중앙부처와 소통이 가능하고 지역의 정서를 잘 파악하여 청년들이 지역에서 미래를 꿈꾸고 문화를 융성하게 할 어른을 보고 싶다. 솔선수범한 율곡 닮은, 어른 노릇 잘 하는 사람을 맞이하는 꿈을 이 가을에 꾼다. 
 
/김현조 전북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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