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침묵의 파문 - 최명표










시, 침묵의
파문 - 최명표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많이 있다. 시나 소설 작품을 애독하는 독자들도 많다. 그러나 문학 작품에 미학적 가치나 문학적 의미를 부여하는 평론집을 사서 읽는
이들은 드물다. 이러한 편독 현상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문학 연구자들 사이에도 팽만해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비평은 시나 소설에 대해 일정한
심미적 거리를 확보하면서, 작품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장르이다. 이러한 속성을 전제하면, 비평 활동에 참가하는 행위는 수고에
비해 찬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수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가에게 요구되는 최우선의 조건은 작품을 열심히 읽기에 있다.

아울러 요즘처럼 상업주의가 만연한 시대에는
비평가에게 부수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문학의 보편성과 고급성을 추구하면서, 문학의 세속화와
하향 평준화 현상을 경계하는 일이다. 그것은 문학의 위의를 옹호하면서, 문학 고유의 문법 체계를 수호하는 일이다. 비평가는 작가가 문학작품 속에
삼투시켜 놓은 미세한 장치들을 섬세한 안목으로 포착하여 독자적인 언어로 진술하여야 한다. 결국 그 준거는 비평가의 자의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비평의 독자들은 그의 평문 속에서 비평적 틀을 발견해내는 최종심급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심히 시를 읽고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론가는 단연 유성호이다. 과장하여 말한다면, 그의 이름은 문학지마다 오르지 않은 지면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입술이 터지도록 시를 읽으며, 신열이 오르도록 글을 쓴다. 이렇게 열심히 시를 읽고 평을 쓰는 그의 노력이 값진 것은, 그가
발표하는 평문들이 한결같이 튼튼한 문학적 이론의 토대 위에서 세밀하고도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는 데서 온다. 그의 비평적 성실성에 기대어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자신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와 이미지의 내포를 유추할 수 있다.

유성호가 최근에 발간한 평론집 ‘침묵의 파문(창작과비평사)’ 속에는 그의 성품대로 온화한 글이 가득하다. 그는 이 책에서 “서정시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구이자, 그 동시적 현재화이며 언어적 대리 구축일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표나게 내세우고 있다. 그의 시론은 궁극적으로 리얼리즘과 서정성의 통합과
길항 속에서 미학적 거점을 확보한다. 이러하 논리는 그의 비평 활동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된 것으로서, 비단 그의 이론적 균형 감각이 입론하게
된 필연적 귀결이다.

전체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한 비평가의 비평적 고뇌를 집성한 것이다. 유성호는 1부에서 자신의 비평적 총론을 개진하고, 2부에서부터는 서정시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시인론, 서평 등을 배치하였다. 독자들은 이 평론집을 통해 동시대의 비평적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나 소설작품을 제대로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다. 그는 분명히 충실한 텍스트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창조적 시 해석의 사례를 유려한 필치로 실현하고 있다.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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