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수 전주시 야호학교 교장
/장경수 전주시 야호학교 교장

영화 ‘늑대아이’는 늑대인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유키(딸)와 아메(동생)를 키우는 힘쎈(?) 엄마의 이야기다.

사냥을 나갔던 아빠가 죽은 후 늑대와 인간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남매를 데리고 엄마는 남매를 데리고 안전한 시골로 들어갔다.

뱀과 개구리를 잡던 유키는 학교를 들어가면서 치마를 입기 시작하고 조용한 소녀로 변한다.

하지만 동생 아메는 하루 종일 앉아 있는 학교가 힘들다.

그래서 결국에 엄마의 간절한 손을 뿌리치고 사람보다는 늑대를 선택하고 깊은 숲속으로 들어간다.

늑대와 사람 사이의 청소년들을 조련하는 건 학교다.

 명문대라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을 향해 유치원부터 책상에 앉게 하는 극성스러운 성공의 강박은 너무 일찍부터 야성의 본능을 거세해 버렸다.

이들의 야성을 연착륙할 수 있는 교육환경이 필요하다.

현재 1년에 5만 명의 아메 같은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탈옥(?)의 의미를 약한 인내심으로 비하하지 말고 우리 친구들이 온종일 거주하는 공간이 상생과 자립을 배워야 하는 본래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그리고 학교 밖 청소년들의 공간은 PC 방과 코인 노래방과 어두운 골목길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간디학교가 있는 금산과 풀무학교가 있는 홍동 지역에 청년이 느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금산 지역의 청년들은 단지 간디학교만 다닐 뿐이었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을 시골 소읍으로 돌아오게 하는 건 학교가 그들의 추억의 플랫폼이면서 충전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홍동의 풀무학교도 마찬가지다.

청소년이 마음껏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생기면 굳이 전주를 사랑하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추억의 시간과 장소를 사랑 할 수밖에 없고 나이가 들더라도 다시 돌아오거나 혹여 돌아오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을 거다.

지금의 교육공간은 산업화시대의 낡은 유물이 되었다.

이제는 다양한 배움을 시도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미치도록  무언가를 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학교는 담장을 허물어 주어 배움의 영토를 넓혀주고 혹여 학교의 경계를 넘은 친구들에게는 국가가 챙겨줘야 한다.

하루 종일 영화만 볼 수 있는 영화관이 학교였으면, / 하루 종일 자전거만 탈 수 있는 도로가 학교였으면, / 하루종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헤매는 숲속이 학교였으면, / 하루 종일 춤을 추는 강당의 마루가 학교였으면, / 하루종일 배고픈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골목이 학교였으면, / 하루종일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이 학교였으면, / 하루종일 땀 흘리며 연기를 하는 연극무대가 학교였으면, / 하루종일 빵을 구워내는 조리실이 학교였으면.

/ 좋겠다 / 좋겠다 / 그랬으면 좋겠다 이 모든 청춘들의 열망이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게 바꿔주는 마술을 이번에 야호학교가 시도한다.

전주형 전환기 교육 야호학교는 ‘내가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17세~19세 청춘들에게 열려 있다.

1년 동안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모든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학교를 2022년에 시작한다.

/장경수 전주시 야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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