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영 전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보영 전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10월 10일은 ‘세계 정신건강의 날’이었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돌아보고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현대사회에서 정신질환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우울과 불안, 무기력과 공황 등 정신건강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특히 장기적인 코로나19로 사회적 우울감이 만연한 분위기다.

정신분석가 에릭 프롬은 ‘인생의 무의미함’을 ‘현대인이 겪는 세기의 질병’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시간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운 마음을 말한다.

모든 인간의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 등 사회적 가치가 목적이 되면서 개인의 삶의 의미를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열린 자살 예방의 날 행사에서는 “인생이 의미 없고 재미없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이가 방 안에서 전혀 나오지 않아요.” 등 무력감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무기력한 상태에 빠진 걸까? 

가장 먼저 손꼽히는 이유는 번아웃 상태의 무기력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이란 ‘소유’의 의미다.

물질, 명예, 권력 등 ‘소유’에 맹목적으로 질주한 많은 이들은, 자칫 작은 좌절과 실패에도 쉽게 무너져버린다.

모든 걸 희생하며 쉼 없이 달려온 목표를 상실하게 된 순간, 커다란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박탈감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 사회를 불공정하다고 느낀다고 한다.

물론 개인마다 주어지는 삶의 여건은 필연적으로 불평등하다.

많은 이들이 최선을 다해 그것을 극복하려 하고, 또 일정한 성취와 각자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간다.

그러나 때로 노력으로 넘을 수 없는 기득권 세력의 벽에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휩싸이게 된다.

셋째는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모를 때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다.

비난과 소외가 두려운 사람들은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낸다.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닌 사회가 원하는 ‘나’다.

이렇게 살다 보면 삶이 지루해지고 알맹이가 빠진 듯한 공허함이 찾아온다.

왜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현대인에게 만연한 무기력증을 개인적 문제나 가벼운 문제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인생의 무의미, 우울증, 무기력증은 자살률을 높이고 결국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

서로를 살피고 도우려는 따뜻한 관심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도우려는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 전주시·전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는 마음안심 버스사업, 감정노동자사업, 순회상담 등을 통해 찾아가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러한 서비스는 무기력, 번아웃 등 정신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전주시민들에게 병원의 문턱을 낮추고 마음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마음의 불편을 느끼는 시민 누구나 전주시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용해 자가검진을 받아볼 수 있다.

센터 내 마음회복 프로그램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문도 활짝 열어놓았으니, 시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해 마음을 회복하고 치유할 수 있기를 권한다.

마음으로 대변되는 정신건강은, 눈에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즐거움도 행복도 마음에 있다.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자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가지며, 건강한 마음을 지켜가는 가을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보영 전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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